Page 47 - 고경 - 2016년 3월호 Vol.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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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가 실상”이라고 했다. ‘공관으로 들어감’이란 모든 것이 성립된 존재’일 뿐 실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공하여 실체가 없음이 존재의 실상임을 바로 깨닫는 것이다. 예를 들어 노란 개나리는 개나리 혼자 피어난 것이 아니다.
존재에 대한 실재론적 인식이 해체될 때 비로소 나와 대상에 토양 속에 있는 수많은 박테리아와 자양분, 빗물과 햇빛과 바
대한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공관은 존재에 대한 람 같은 대기환경 등 말할 수 없이 많은 관계의 산물이다. 개
실체론에서 비롯된 욕망을 해체하고 영혼의 속박을 푸는 해 나리는 개나리라는 독립적 실체가 있어 저절로 핀 것이 아니
탈의 인식이자 눈이다. 그래서 공관은 반야사상의 핵심을 이 라 무수한 존재들의 관계와 도움 속에서 피어난다. 따라서 개
루고 있다. <금강경>에서는 “일체 모든 유위법은 마치 꿈, 환 체로서의 개나리는 거짓 이름일 뿐이며, 개나리의 진짜 근원
영, 물거품, 그림자와 같다.”고 했다. 은 관계성의 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존재를 볼 때 “마땅히 이와 같이 보라! [應作 이렇게 보면 가관은 모든 존재가 거짓 이름이며 텅 비어 있
如是觀]”고 강조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 <반야심경>은 “오온이 다는 것이 핵심이 아니다. 모든 존재는 보편적 관계 속에서
공함을 알아서 일체 모든 고통과 불행에서 벗어났다.”고 설한 우주적 무게로 펼쳐져 있음을 보는 것이 가관이다. 가관에
다. 공을 바로 알아야 모든 고통과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다 들어가지 않고 공관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허무주의에 빠
는 것이다. 질 위험이 있다. 모든 것은 공하고 헛된 것으로 잘못 인식할
둘째는 가관(假觀)이다. 존재의 본질적 실상이 공하다고 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오류에 빠지지 않으려면 눈앞에 펼쳐
을 때 여기서 공이란 ‘아무 것도 없는 텅 빔’을 의미하는 것이 진 삼라만상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눈이 필요하다. 가관은
아니다. 우리 눈앞에 존재하는 무수한 존재들은 무엇인가라 개체존재의 거짓을 폭로함으로써 한 존재의 그림자에 가려져
는 물음이 남는다. 가관은 그 모든 것들이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존재의 우주적 관계성을 깨닫게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
있는 ‘거짓 이름’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존재는 우리가 보는 면 가관은 허무주의로 매몰될 수 있는 인식을 중화하는 긍정
개체라는 거짓 이름이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무수한 관계 의 안목이다.
속에 존재한다. 그래서 천태대사는 “만약 하나의 법과 일체법 셋째는 중도관이다. 모든 존재는 실체가 공하다는 ‘공’과 모
이 인연으로 생겨난 법 [因緣所生法]이라면 이것은 거짓 이름 든 것은 상호관계 속에서 인연으로 성립되어 있음으로 거짓
[假名]”임을 확고하게 아는 것을 가관(假觀)이라고 했다. 모든 이라는 ‘가’는 서로 대립되거나 모순적인 진술이 아니다. 공은
존재는 서로 원인이 되고, 조건이 되어 상호의존하는 관계를 ‘텅 빔’이라는 허무적멸이 아니라 관계성을 밝히는 것이므로
통해 눈앞에 존재하는데 그것은 ‘인연소생법’ 즉 ‘인연에 의해 공관에 들어가면 개체 존재는 이름에 불과하다는 가관이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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