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2 - 고경 - 2016년 3월호 Vol. 35
P. 52
왕에게 목숨을 구해달라고 청하였다.
이에 석가모니의 전생의 모습이었던 사슴왕은 암사슴을
대신하여 자신이 국왕에게 바쳐지도록 하였다. 큰 사슴왕이
성문으로 들어오자 모든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하였고, 국
왕 역시 사슴왕에게 그 연유를 물었다. 이에 사슴왕은 뱃속
에 새끼를 가진 암사슴을 대신하여 왔음을 알렸고, 이에 감
탄한 국왕은 모든 사슴을 풀어주고 그곳을 사슴이 사는 동
산으로 정하였다. 이후 이곳은 ‘사슴에게 보시한 동산’이라는
이름의 시록림 (施鹿林)으로도 불리게 되었다.
이 고사는 석가모니가 전생에 불교의 여러 덕목 가운데 하
나인 자비 (慈悲)를 적극적으로 실천했음을 강조하는 내용이
다. ‘자비’에서 ‘자(慈)’는 상대방에게 기쁨을 주려는 마음이 셀 수 없음을 뜻한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단박에 성불하려
고, ‘비 (悲)’는 상대방의 고통을 없애주려는 마음이다. 사슴왕 고 하기보다는 육바라밀과 같은 훌륭한 행위를 꾸준히 쌓아
이 보여준 이러한 자비의 마음은 국왕을 감동시켰고, 결국 가는 것이야말로 성불의 단초가 된다.
사슴 무리 전체를 다 살리게 하였던 것이다. 자비는 오늘날의
‘공감’이라는 용어와 유사하게 사용되는데, 여기에는 타인의 ● 돈오설(頓悟說)
즐거움과 고통을 감지하는 공감의 능력이 전제되어야 하기 그런데 같은 불교 내에서도 성불에 대해 위와 완전히 상반
때문이다. 되는 견해가 존재한다. 이는 특히 중국의 선종에서 강조되었던
이처럼 온갖 덕을 다 갖춘 부처님의 장엄한 모습은 어느 돈오설 (頓悟說)이다. 돈오설은 현생을 떠나지 않고 단박에 성불
한 순간에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과거 전생의 무수한 하는 것을 역설하는 것으로, 『명추회요』 역시 이런 입장에 서
세월 동안 구체적인 행위를 통해 축적되었음을 강조하는 것 있다. 이 책의 113쪽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이 바로 성불과 관련된 인도 불교의 기본적인 관점이다. 인도
불교의 영향이 강한 유식 불교 혹은 티벳 불교 역시 성불에 종경(宗鏡)에 깨달아 들어가면 성불(成佛)이 일념(一念)을
있어 삼아승기겁 (三阿僧祇劫)이 걸린다고 보는데, ‘아승기’란 벗어나지 않는다.
50 고경 2016. 03. 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