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0 - 고경 - 2016년 3월호 Vol.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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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추회요』, 그 숲을 걷다          ●   글 _ 박인석                                    ● 점오설(漸悟說)

                                                                                 먼저 인도불교에서는 대부분 셀 수 없을 만큼 오랜 시간이
                                                                               걸린 후에 성불한다고 설명한다. 이런 관점을 갖고 있었기 때
                                                                               문에 인도 불교도들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현생에서 성불하
         성불(成佛)의                                                               기 이전에 무수한 전생을 통해 다양한 보살행 (菩薩行)을 실천

                                                                               했음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이런 내용을 담은 경전을 본생경
         속도                                                                    (本生經)이라고 부른다. 본생경에는 석가모니가 전생에 국왕·


                                                                               바라문·상인·여인 등의 사람의 모습, 혹은 코끼리·원숭이·
                                                                               사슴·곰 등의 동물의 모습으로 중생의 고통을 구해주었거나

                                                                               불도를 수행했던 공덕을 묘사하고 있다. 이는 부처님이 성불
                                                                               한 뒤 최초로 법을 설했던 녹야원 (鹿野苑)이라는 장소의 이름
                                                                               에서도 잘 나타난다. 오늘날 인도 불교의 4대 성지 가운데 하
           ●                                                                   나로 꼽히는 이곳은 석가모니가 과거 전생에 사슴왕의 모습
                     『명추회요』에는 불교의 매우 다양한 주제들이                                  으로 살면서 사슴 무리를 구했던 살신성인 (殺身成仁)의 전설

         언급된다. 그 중 한 가지가 113쪽에 나오는 ‘어찌 마음 밖에                                   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서 망령되게 구하랴’라는 제목 아래에서 다루어지는 성불의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과거 전생에 한 나라의 국왕이
         속도에 대한 내용이다. 불자들이라면 대개 절에 갔을 때, ‘성                                    녹야원이 있던 장소에서 사슴을 사냥하였다. 그곳에는 모두

         불하십시오’라는 인사를 한 번씩 나눠보았을 것이다. 아마 이                                     천 마리의 사슴이 살고 있었는데, 국왕은 그곳의 사슴을 모
         인사는 불교의 목표가 부처님이 되자는 데 있기 때문에 나                                       두 잡게 하였다. 이때 사슴왕은 국왕에게 매일 한 마리의 사
         온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부처님이 되는 데는 얼마만큼의                                      슴을 보낼 테니 모든 사슴들이 한꺼번에 다 죽는 것은 면하
         시간이 걸릴까? 불교사를 보면 많은 불교도들이 오랫동안 이                                      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렇게 하여 하루 한 마리의 사슴만
         문제에 대해 고민해왔고, 그에 대한 대답 역시 매우 다양함을                                     희생되었다. 그러다가 무리 가운데 새끼를 가진 암사슴 한 마

         알 수 있다. 여기서는 매우 상반된 관점을 하나씩 들어보고                                      리가 죽을 차례가 되어 국왕 앞으로 가게 되었는데, 암사슴
         자 한다.                                                                 은 뱃속의 새끼는 아직 죽을 차례가 되지 않았으므로, 사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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