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7 - 고경 - 2016년 4월호 Vol.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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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중국 철학에서 가장 유사한 용어로부터 빌려 쓰고자 했  해서는 크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던 중 2005년부터

 다. 그때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노자』의 ‘무(無)’였다.   2006년까지 중국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어 북경 (北京)에서 1
 비어 있다는 의미의 ‘공’과 가장 유사한 것으로 없다는 뜻의   년간 머물게 되었는데, 그때 북경대 (北京大) 대학원의 불교 강
 ‘무’를 대응시켜 본 것이다. 그런데 하나의 개념은 오랜 역사   좌에 참여할 수 있었다. 올해 팔순을 훌쩍 넘긴 루우열 (樓宇
 속에서 형성되는 것인 만큼, 『노자』의 ‘무’는 단지 없음을 뜻  烈) 교수님의 수업을 듣게 된 것이다. 이 교수님은 원래 중국
 하는 것은 아니었다. 만물의 근원인 ‘도(道)’는 인간의 지각능  철학을 전공하다가 후에 중국불교 연구에 매진한 분으로 중

 력으로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보면 마치 없는   국에서 상당한 학문적 권위를 지닌 분이다.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것이야말로 가장 생동력 있게 존재하  당시 진행된 강좌는 특별한 형식이 없이 참여한 학생들이
 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 따르면, ‘공’을 『노자』의 ‘무’로 이해한   중국불교나 철학 전반에 걸쳐 궁금한 점이 있으면 그때그때

 것은 공을 텅 비었다는 원의 (原義)보다는 뭔가가 실체로 존재  질문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던 중 선종에서 가장 유명한 일화
 한다는 의미로 오해할 여지를 남기게 되었다.  가 언급된 적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육조혜능 스님께서 오
 오랜 시간이 흘러 중국의 불교도들은 ‘공’이 어떤 사물을   조홍인 대사에게 가르침을 받는 과정에서 신수 스님과 더불
 이동시킨 다음 나타나는 빈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사물과   어 게송을 바치는 장면에 대한 것이었다. 필자 역시 그 내용
 사건 그 자체의 성격을 규정하는 개념이라는 것을 보다 정확  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저 덤덤하게 듣고 있었는데, 교수님께

 히 알게 되었다. 이 세계에 있는 어떤 하나의 사물이나 사건  서 그 게송들을 ‘공’의 개념으로 해석하는 것을 듣고 아주 신
 을 들어 보더라도 그것은 무수한 인 (因)과 연(緣)이 복합적으  선한 감동을 받았었다.
 로 얽혀서 생기 (生起)하는 것이지, 그 속에 불변의 실체가 있

 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공이 초기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  ● 신수 스님과 혜능 행자의 게송
 (緣起)를 뜻하는 것임을 분명히 파악하게 된 것이다.  『육조단경』을 보면, 오조 스님의 제자들 가운데 학식이 가
          장 높고 연령 역시 높았던 신수 스님은 깨달음의 경지를 시로
 ● 선종에 나타난 공사상  써 보라는 오조 스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공개적으로 밝히
 대학원에서 불교를 공부하던 시기에 필자는 공이 이른  기보다는 밤에 몰래 건물의 벽에다 적어 두었다. 그것은 다음

 바 교학(敎學)불교에서만 주로 다뤄진다고 생각하였다. 그래  과 같다.
 서 이 개념이 선종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지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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