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9 - 고경 - 2016년 4월호 Vol.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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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보리의 나무요   身是菩提樹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菩提本無樹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나니   心如明鏡臺  밝은 거울 또한 받침대 없네    明鏡亦無臺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時時勤拂拭  부처의 성품은 항상 깨끗하니    佛性常淸淨
 띠끌과 먼지 묻지 않게 하라.   莫使有塵埃  어느 곳에 티끌과 먼지 있으리오.  何處有塵埃


 이 게송을 본 뒤 오조 스님은 신수 스님을 불러 다음과 같  이 게송을 본 오조 스님께서 야반 삼경에 혜능 행자를 조

 이 말씀하셨다. “네가 지은 이 게송은 소견은 당도하였으나   사당 안으로 불러 『금강경』을 설해 주셨고, 혜능은 한 번 듣
 다만 문 앞에 이르렀을 뿐 아직 문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하  고 말 끝에 문득 깨쳤다. 이에 오조 스님께서 단박에 깨치는
 였다. 범부들이 이 게송을 의지하여 수행하면 곧 타락하지는   법과 가사를 혜능 행자에게 전하신 뒤, 하산을 명하신다.

 않겠지만 이런 견해를 가지고 위없는 보리를 찾는다면 결코
 얻지 못할 것이다. 모름지기 문안으로 들어와야만 자기의 본  ● 공(空)의 자각
 성을 보느니라.” (성철 스님, 『돈황본 육조단경』) 오조 스님의 말씀  아마 『육조단경』뿐 아니라 선종에서 가장 유명한 일화로
 을 들어보면, 스님은 이 게송에 대해 어느 정도 인정하는 바  꼽힐 이 내용에 대해 북경대 루우열 교수님은 두 스님의 차
 가 있긴 하지만, 궁극적인 점에 있어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이를 ‘공’으로 설명하셨다. 게송을 보면, 신수 스님은 자신의

 다. 이에 오조 스님은 신수 스님에게 게송을 다시 지어 오라  몸과 마음을 부지런히 움직여 눈앞의 번뇌를 성실히 제거하
 고 하였지만, 신수 스님은 끝내 게송을 짓지 못하였다.  려고 노력하는 수행자이지만, 번뇌의 정체가 ‘공’하다는 점에
 그 후 오조 스님 도량에서 많은 스님들이 신수 스님이 지  대해서는 여전히 크게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해 번뇌

 은 게송을 외우자, 당시 방앗간에서 방아를 찧던 혜능 행자   가 자성 (自性, self identity)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우리가 아
 역시 그 게송을 듣게 되었다. 게송을 들은 혜능 행자는 생각  무리 털고 닦더라도 그 번뇌를 다 없앨 수 없다는 것이다. 이
 한 바가 있어서 신수 스님의 게송이 적힌 곳에 이른 뒤 글을   에 비해 당시 행자였던 혜능 스님은 “어느 곳에 티끌과 먼지
 아는 사람에게 자신의 게송을 적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왜냐  있으리오.”라고 하여 번뇌의 성품이 본래 텅 빈 것, 다시 말해
 하면 혜능 행자는 글을 배운 적이 없어서 자신이 직접 게송  ‘공’한 것임을 여실히 자각하고 있었다. 즉 우리의 번뇌 망상

 을 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일자무식의 나이 어린 행자였던   이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그런 줄 확실히 자각하는
 혜능의 게송은 다음과 같다.  것이 바로 진정한 수행이라는 것이다. 필자로서는 공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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