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 - 고경 - 2016년 5월호 Vol.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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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할 시간도 없었고 더구나 학문할 재주가 없었음을 솔직

 히 고백함이 편할 것 같습니다.
 범어사에서 봉행되는 동산 노스님의 제사는 음력 3월 23
 일입니다. 매년 꼭 참석하고 나서 무비 큰스님을 찾아 인사를
 드립니다. 무비 스님은 한때 디스크 치료를 잘못 하여 하반신
 마비가 되었을 정도로 꼼짝 못하고 병석에 계신 때가 있었습

 니다. 한 번은 문병차 인사를 드리니 아래와 같이 말씀하시
 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꼼짝 못하고 누워 있는 덕분에 원택 스님이 출간한
                                       개정증보판 『 성철스님 시봉이야기』
 성철 스님 백일법문 CD를 수십 번도 더 들었으니 당신 상좌
 들보다 내가 더 당신을 아는 상좌가 되었네. 지금 돌이켜 보
 니 옛날에 범어사나 종단에 큰스님들이 많이 계셨고, 모두들   그동안 준비하고 또 기다리고 기다리던 개정증보판 『성철
 존경할 만한 수행과 학덕을 가졌던 어른스님들이셨어. 그러  스님 시봉이야기』가 512쪽짜리 한 권으로 4월 15일에 발행
 나 지금에 와서 보니 그 큰스님네들의 흔적이 아무것도 남아   되어 책을 받아들고 책장을 넘겨보니 감개무량하였습니다.

 있는 것이 없어. 그 뒤의 사람들이 자료와 기록을 잘 정리하  2001년 5월부터 중앙일보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산은 살 물
 여 남겼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이 없으니 세월 속에 그 큰스님  은 물, 성철 스님 시봉이야기’가 주 5일씩 연재되기 시작하
 들의 자취를 찾을 길이 없어. 그러나 다행히 성철 스님을 상  여 10월 말쯤에 연재를 마치게 되니 정말 하늘을 날 듯 가뿐

 좌들이 자취를 잘 정리해가고 있으니 참 고마운 일이요. 원택   한 기분이 되살아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연재를 하면서 글쓰
 스님, 주위의 말에 신경 쓰지 말고 열심히 하소!”  기가 힘들 때마다 이헌익 부장과 오병상 기자를 원망하고 또
 위 이야기를 장 기자에게도 했던 기억입니다. 이 글에서 장   원망하였는데 이번에 다시 예전의 시봉이야기에 더해 100여
 기자는 “남이 보면 성철 스님 개인을 위한 일처럼 보이겠지만   쪽에 이르는 ‘6장 시봉이야기 그 후’ 챕터를 새롭게 추가하여
 나중엔 불교 전체를 위한 일이었음을 그들도 알게 될 것이라  1993년 11월 큰스님이 열반에 드신 후 23년간 이루어진 추모

 고 한 무비 스님의 말씀이 위로가 힘이 된다.”고 저를 격려하  사업들을 첨가하고 보니 저도 백련암에서 출가한 지 45년이
 고 있는 셈입니다.  나 됨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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