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8 - 고경 - 2016년 6월호 Vol.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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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의 본성과 모양에 상응하는 몸과 국토가 나타나지만, 번뇌 할 수 없을 것이다.
를 자꾸 끊어가게 되면 또한 그에 상응하는 몸과 국토가 현 이런 난점을 두고 대답에서는 다양한 경론의 해석을 제시
현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번뇌가 끊어져 버린 궁 하지만, 여기서는 『대지도론』의 설명을 참조하는 것이 좋을
극의 경지인 법성 (法性)의 상태에 이르면 몸과 국토는 어떤 것 같다. 『대지도론』에서는 제법의 본성인 ‘법성’을 생명 있는
관계를 갖게 될 것인가. 연수 스님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유정에 적용하면 ‘불성’이라 부르고, 무정에 적용하면 ‘법성’이
157쪽에 나온 『청량소』의 문구를 인용하였던 것이다. 라고 부르며, 또한 이를 법성신이나 법성토와 같이 주체와 객
체로 나누어 표현하기도 하지만, 실제 이들은 차이가 없다고
묻는다. 법성신(法性身)과 법성토(法性土)는 다른가, 다르 설명한다. 즉 우리가 쓰는 관습적인 표현에 따라 ‘법성’을 몸
지 않은가? 다르다면 법성이라고 하지 못하니 법성은 둘 과 국토 등으로 나누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다르지 않다는 말
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르지 않다면 능의 (能依, 몸)와 소의 이다. 이는 방편과 진실의 두 가지 차원에서 법성신과 법성토
(所依, 국토)가 없을 것이다. 의 관계를 설명한 것이다. 이상의 논의는 매우 고원한 차원의
답한다. 경론(經論)에서 각기 다르게 설명하고 있는데, 법 것으로 이해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울 수 있지만, 이를 인용한
신 (法身)으로 통괄하면 대략 열 가지가 있다. …(필자 생 연수 스님의 의도는 아마 그와 같이 고원하고 까다로운 문제
략)… 『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는 ‘유정(有情)의 무리 중 를 풀어가는 실마리가 바로 사람들 각자의 마음에 있음을 상
에 있을 때는 불성 (佛性)이라 하고 무정(無情)의 무리 중 기시키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에 있을 때는 법성이라고 하여 방편으로 능소(能所, 주체와
객체)를 말하였지만 실제로는 차이가 없다’고 하였다.
질문을 보면 법성신과 법성토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생길
수 있는 두 가지 문제점을 동시에 제기한다. 먼저 법성 (法性)
이란 제법의 본성을 뜻하므로 두 가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법성신과 법성토를 마치 다른 것처럼 사용하고 있
으니, 이 두 가지가 다르다면 ‘법성’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박인석 ●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영명연수 『종경록』의 일심
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의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불
그러나 만약 이 두 가지가 다르지 않다면 몸과 국토를 구분 교전서>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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