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2 - 고경 - 2016년 6월호 Vol.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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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철로 다니던 길을 자전거로 다닌다. 돈이 덜 드는 대신
제51칙 힘이 더 든다. 물론 돈으로 매길 수 없는 보람이 있다. 달리다
법안의 뱃길과 물길(法眼舡陸, 법안강륙) 보면, 날아갈 것도 같다. 먹어야 한다는 본능과 벌어먹어야
한다는 책임을 잊게 되고, 자잘한 걱정들은 만춘(晩春)의 꽃
법안문익(法眼文益)이 각상좌(覺上座)에게 물었다. “배로 가루로 흩날린다. 그리하여 안목이란 뼈대라기보다는 날개다.
왔는가, 뭍으로 왔는가?” “배로 왔습니다.” 법안이 다시 백점을 맞고 싶다는 마음을 빵점을 맞겠다는 마음으로 치환
물었다. “배는 어디에 있는가?” “강에 있습니다.” 법안이 할 수 있는 이 순간, 나는 별의 남편 바람의 스승. 마음에도
옆에 있던 승려에게 물었다. “말해봐라. 과연 저 자가 안 자전거 한 대 사줘야겠다.
목을 갖춘 것 같으냐, 아닌 것 같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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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다. 나를 떠받치는 동시 제52칙
에 나를 빨아들이며 달려가는 부력과 인력의 조화는 정답다. 조산의 법신(曹山法身, 조산법신)
집에 돌아오면 놓아둘 데가 마땅치 않아, 집 안까지 끌고 들
어온다. 그보다는 누가 훔쳐갈까 걱정돼서다. 현관 앞에서, 내 조산본적(曹山本寂)이 덕(德) 상좌에게 물었다. “부처님의
소유(所有)의 선두(先頭)에서, 나의 노동과 근력을 증거하고 참된 법신은 허공과 같아서, 사물에 응하되 형상을 나타
있는 검은 몸뚱이를 보고 있으면 뿌듯하다. 그리고 내일 다시 냄이 마치 물속의 달과 같다. 어떻게 하면 이 도리를 설명
그럴 것이기에 설렌다. 할 수 있겠는가?” 덕상좌가 답했다. “노새가 우물을 엿보
교외별전 (敎外別傳) 간두진보(竿頭進步). 선가(禪家)에선 ‘깨 는 격이겠지요.” 조산이 말했다. “그럴듯하긴 한데, 아직
달음에 이르렀다면 사다리는 버려야 한다’고 가르친다. 법열 2할이 모자라다.” 이번엔 덕상좌가 물었다. “화상께선 어
(法悅)을 맛본 자는 사다리가 만능인 양 집착하거나, 남들이 떻게 말하시렵니까?” “우물이 나귀를 엿보는 것과 같다.”
자신의 경지에 침범할까 전전긍긍하게 마련이다. 한편으론
사다리가 있어야, 지금 처한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어디든 훌 노새가 우물을 엿보는 까닭은, 목을 축이기 위해서다. 우물
훌 이동할 수 있는 것 아닐는지. 강가에 묶어둔 배는 오랫동 은 무엇을 보았든, 잡아먹지 않는다. 되는 대로 살아가는 것
안 집을 지킨 개처럼 듬직하다. 이 보살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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