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9 - 고경 - 2016년 7월호 Vol.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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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 스님의 화두 참선 이야기  ●  정리 _ 박희승  현실입니다. 저 역시 강원 공부를 하고 선방에 꽤 다녔어도

          돈오점수가 옳고 돈오돈수는 틀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선방에서 어떤 경계를 체험하고 무심코 『육조단경』
 돈오점수에    을 보다가 중생과 부처 양변이 무너지고 하나라는 것을 깨달
          아 방향 전환을 했습니다.

 대하여        그래서 직지, 돈오의 간화선을 하는 참선 수행자들도 스스
          로 본래부처가 부처되는 달 불교를 알지 못하면, 결국 교학이
          나 남방 위빠사나 수행법에서 말하는 중생이 세세생생 닦아
          서 부처, 아라한이 되는 손가락 불교를 하게 됩니다. 이것은

          돈오와 직지의 선이 아니니 참선 수행에서 큰 진전이 어렵습
          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중생이라 생각하고 믿고 부처되기 위
 ●        해 참선한다는 입장은 부처님이 깨친 중도에 정견이 서지 못
 선 (禪)은 본래부처가 부처되는 것이니 단박 깨  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들은 금강산이

 침, 돈오(頓悟)입니다. 단박에 깨치니 단박에 닦는 돈수(頓修)  어디에 있는지 가는 길도 모르면서 이미 집을 나서 금강산을
 이고요. 선은 오직 달, 즉 깨달음만을 사실로 보고 달을 가리  가는 것과 같은 입장입니다.
 키는 손가락이나 방편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선의 특  그렇다면, 선 (禪)에 어째서 중생과 부처, 번뇌와 망념이 있
 색입니다. 선은 중생과 부처, 깨달음과 미망 같은 대립하는 양  다고 보는 돈오점수 수행관이 스며들어 혼돈을 낳고 있을까

 변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착각된 상대 분별의 세계일  요? 그것은 이미 성철 스님이 1967년에 ‘백일법문’을 하시면
 뿐, 중도불이 (中道不二)의 절대세계인 선이 아닙니다.   서 소상히 밝혀 놓았습니다(『백일법문』 하권 선종사상편)만, 정리
 우리가 본래부처이나 중생이라는 착각에서 살아가는 상대   해 보면 이렇습니다.
 분별의 안목으로는 깨달음의 절대세계인 선 (禪)을 이해하기
 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중에서도 돈오와 돈수는 더욱 더 그  ● 돈오점수(頓悟漸修)란 무엇인가?

 렇습니다. 참선 수행을 오랫동안 해온 분들조차 돈오와 돈수  돈오점수의 입장은 부처님이 방편으로 말씀하신 경전에 일
 를 정확히 알고 남에게 설명할 수 있는 분이 많지 않는 것이   반적으로 설해져 있습니다. 때문에 남방불교에서 전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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