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 - 고경 - 2016년 7월호 Vol.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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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는 두 문(門)은커녕 한 문도 없습니다. 그것을 조사들은 무                                    존재하니 실체가 없습니다. 그러니 본질은 하나입니다. 어린

         문관(無門關) 또는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 합니다.                                          아이나 성인도 기능과 모양은 다르지만, 본질은 연기로 존재
           또한 범부와 성인도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범부도 중도                                     하니 실체가 없어 무아, 공입니다.
         연기로 존재하고 성인도 그렇게 존재하니 하나입니다. 둘로                                         그래서 『반야심경』에 불생불멸 (不生不滅), 태어나는 것도
         보면 정견이 아니지요. 그래서 돈오와 점수 두 문을 말하는                                      사라지는 것도 없습니다. 선사들이 흔히 말하는 생사일여 (生

         것은 선의 종지에서 어긋납니다. 또 “깨달았으나 오랜 습기 (習                                   死一如),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라는 말도 같습니다. 생과 사
         氣)는 갑자기 제거하기 어려우니” 하는 대목도 습기를 인정                                      도 겉모습은 다르지만, 본질은 연기이니 하나입니다.
         하는 것이 되니 이것도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선과는 다르지                                        이와 같이 우주 만물을 중도연기로 보는 중도 정견이 선
         요? 선문(禪門)에서는 확철대오, 즉 번뇌망념이 완전히 비워                                     (禪)입니다. 이와 달리 우주 만물을 생멸연기로 보게 되면 생

         진 것을 견성이라 합니다. 아직 미세하나마 뭔가 남아 있으면                                     과 사, 중생과 부처, 번뇌와 지혜가 각각 있는 것으로 보아 양
         돈오라 할 수 없습니다.                                                         변을 인정하고 그 바탕에서 닦아가는 점수(漸修)가 옳다는
           마지막 비유인 어린아이가 세월이 흘러서 성인이 되는 것                                      견해에 이르게 됩니다. 불교의 수행체계로 볼 때 남방의 위빠
         과 같다고 돈오점수를 설명했는데, 이것도 어린아이와 성인이                                      사나와 교학의 입장에서는 돈오점수 방법으로 실천해 나가고
         라는 양변이 있으니 선이 아닙니다.                                                   있습니다. 이것은 이것대로 합당합니다.

           『수심결』에서 돈오점수 견해를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개                                         다만, 조사선·간화선을 말한다면 오직 본래부처, 현실극락
         념이 생멸연기 (生滅緣起)관입니다. 생하고 멸하는 것이 ‘있다                                    뿐이니 중도연기관이며, 돈오돈수, 대도무문, 무돈무수, 닦되
         [有]’는 입장으로 연기를 보는 것이지요. 이런 연기관으로 보                                    닦음이 없는 무수지수(無修之修)의 수행체계입니다.

         니 어린아이와 성인이 사람인 것은 같으나 세월이 흘러야 성
         인이 된다고 하는 것처럼 생하고 멸하는 것이 있고, 있으니
         시간 관념이 들어 갑니다. 내가 태어나 늙고 병들어 죽으니
         무아라는 입장이니 생로병사하는 내가 있다고 보는 것이죠.
         내가 있으니 윤회 반복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생멸연기가 아닌 중도연기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박희승(중효)  ●          성철선사상연구원 연구실장, 한국문화연수원 위촉교수, 봉암사 세
                                                                               계명상마을사업단장, 동국대 평생교육원과 겁외사에서 “생활참선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
         이 중도연기가 바로 선입니다. 즉, 범부와 성인도 중도연기로                                     다. 저서로 『선지식에 길을 묻다』와 『고우 스님 육조단경 강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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