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 - 고경 - 2016년 9월호 Vol.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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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강원을 졸업하고 스님은 본격적인 납자(衲子)의 길                                   됐습니다. 그 수첩은 고암 큰스님의 모든 것이 담긴 것이었습

         에 들어섰다. 첫 철을 해인총림선원에서 보낸 뒤 인천 용화                                      니다. 큰스님께서 젊은 시절에 제방의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사, 기장 묘관음사, 통도사 극락암, 순천 송광사 등의 선방에                                    나눈 선문답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습니다.”
         서 정진했다. 10여 년의 대중수행 뒤에는 토굴정진도 오랫동                                       중천 스님은 수첩을 직접 보여주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특
         안 했다. 양양 낙산사 주지와 상주 남장사 주지도 ‘잠깐’ 했다.                                  히나 눈에 들어온 것은 용성 스님과 고암 스님의 문답. 고암
         “사찰 주지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이어서 빨리 벗어 버렸다.”고                                    스님이 36세이던 1934년 음력 6월 5일 내원사 천불선원에서

         한다. 제방에 다니면서도 틈틈이 용탑선원에 와 스승 고암 스                                     용성 스님과 나눈 문답이다. 중천 스님은 고암 스님의 말로
         님을 시봉했다.                                                              뜻을 풀기 시작했다.
           중천 스님에게 고암 스님은 어떤 스승이었을까?                                             “나는 용성 선사께 여쭈었다. ‘금강경 (金剛經)은 모두 공리

           “고암 큰스님은 조계종 종정에 추대되실 정도로 선 (禪), 교                                  (空理)입니까?’ 용성 선사 답하시길 ‘반야(般若)의 공리(空理)
         (敎), 율(律)에 두루 뛰어난 어른이셨습니다. 사람들은 큰스님                                   는 정안(正眼)으로만 보느니라’ 하시면서 ‘조주 무(無)자 십종
         을 ‘자비보살’로만 말하는데 선 (禪)에도 밝은 분이셨습니다.                                    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하는가?’하고 물으시었다.
         언젠가 제가 큰스님과 말씀을 나누다 ‘수첩’의 존재를 알게                                        답하길 ‘但行劍上路라. 다만 칼 위를 걸어갑니다’ 하였다.
                                                                               선사께서 다시 물으시었다.

                                                                                 ‘世尊拈花 微笑消息의 意旨如何. 세존의 염화미소 소식
                                                                               이 무슨 뜻인가?’
                                                                                 나는 답하기를 ‘獅子窟中 別無異獸. 사자굴 가운데 다른

                                                                               짐승이 없습니다’
                                                                                 용성 선사께서 다시 물으시었다.
                                                                                 ‘육조 대사께서 이르시길 비풍번동(非風幡動)이라 하였는데
                                                                               그대 뜻은 어떠한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삼배를 올리고, ‘天高地厚, 하늘은

                                                                               높고 땅은 두텁습니다’ 하였다.
           중천 스님이 고암 스님과 용성 스님의 문답이 적힌 수첩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다시 여쭈었다. ‘선사님의 가풍은 어떤 것입니까?’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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