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7 - 고경 - 2016년 10월호 Vol.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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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곳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연수 선사의 가르침을 따르면, 사람
은 결국 하나다. 들이 깨끗해지거나 오염되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자각하고
이 말씀은 이후 복잡하게 활용하는 것의 여부에 달려 있다.
이어지는 『명추회요』의 논 다음으로 달마 대사의 『이입사행론』은 깨달음에 들어가는
의들을 이해하는 데 큰 도 두 가지 방식인 ‘이입 (二入)’과 구체적인 실천인 ‘사행(四行)’을
움을 준다. 즉 아무리 어렵 설명하는 책이다. 먼저 ‘이입’이란 이치를 자각하여 깨달아 가
고 복잡한 내용이 나오더라 는 방식인 이입 (理入)과 실천을 통해 깨달아 가는 방식인 행입
도 그것은 결국 우리 마음 (行入)의 두 가지를 말한다. 그리고 행입의 구체적인 방법으로
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하 ‘사행 (四行=네 가지 행)’이 나온다. 네 가지 행이란, 첫째 억울함
중국 달마동굴 앞의 달마 대사 상
나의 방편으로 기능한다는 을 참는 것, 둘째 인연을 받아들이는 것, 셋째 아무 것도 구하
점이다. 이 말씀은, 우리가 이 책을 읽을 때, 이 책 전체의 내 지 않는 것, 넷째 다르마(법, 자연, 진리)를 따라 사는 것이다.
용을 다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도, 우리에게 딱 와 닿고 걸리는 이 네 가지는 모두 구체적인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내용을 통해 이 책의 근본종지를 사색하는 것이 오히려 더 대처하는 방식으로, 실제로 해 볼 경우 어느 하나 제대로 행
중요할 수 있음을 시사해준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이리 저리 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가령
펼치다가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에 더 침잠하는 억울함을 너무 참다 보면 화병이 날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억
것도 하나의 좋은 독서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울함이 발생한 상황을 계기로 삼아, 그 속에서 느껴지는 자기
다시 대답에 나오는 내용을 좀 더 살펴보자. 마명 조사는 마음의 반응이나 일들의 인과 관계를 면밀히 살펴볼 수 있다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을 지으셨고, 달마 대사의 가르침은 면, 억울함을 통해 도리어 우리가 성숙해지는 장을 만들 수
『이입사행론(二入四行論)』으로 정리되었다. 『대승기신론』은 동 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각이 쌓여 가면 언젠가는 연
아시아 불교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논(論)으로서, 깨달음의 수 선사가 말한 근본 종지인 마음의 진면목에 보다 더 가깝
경계와 미혹의 세계를 하나의 마음, 곧 일심 (一心)을 기반으로 게 갈 수 있을 것이다.
설명한다. 여기서 일심이란 바로 중생의 마음 그 자체를 가리
킨다. 즉 이 마음을 통해 부처님과 같이 깨끗한 진여의 세계 박인석 ●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영명연수 『종경록』의 일심
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의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불
로 갈 수도 있지만, 도리어 오염된 생멸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교전서>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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