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1 - 고경 - 2016년 10월호 Vol.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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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에서 물러나야 할 판이다. ‘사내’ 자체가 권력이었던 시대  데요.” “나는 그 자의 말을 알지 못한다.” “왜 묻지 않으셨

 적 배경이 얼마간 작용했을 것이다. 여하튼 설법의 요지는 보  습니까?”
 살이 지녀야할 무궁한 자비심이다. 끊임없이 용서와 배려로   법안이 되물었다. “만상 가운데서 홀로 몸을 드러낸다 함
 일관하라는 이야기인데, 반전이 절묘하다. “그래야만 다음 생  은 무슨 뜻인가?” 자소가 말없이 불자를 들어보였다. “장
 에 그러한 남편을 안 만날 것이다. 빚을 다 갚았기 때문이다.”  경에게서 배운 것이군. 자네의 경지를 말해보게.” 자소가
 대사각활(大死却活). 크게 죽어야 도리어 산다는 뜻이다. 사  잠자코 있자 법안이 다시 질문했다. “만상(萬象) 가운데서

 람은 시련 속에서 성장한다. 평탄한 인생은 사실 무방비의 인  홀로 몸을 드러낸다는 말은 만상을 무시하는 것인가? 무
 생이다. 지금 힘들고 괴롭다면, 일종의 투자라고 생각해야 마  시하지 않는 것인가?” 자소가 대답했다. “무시하지 않는
 음이 편해진다. 내생에 받을 벌을 금생에 받고 있을 뿐이다.   것입니다.”

 또한 부활에는 인내와 함께 시간이 필요하다. 안달이 난다고   “두 개로구만(兩箇).” 좌우에서 법안의 가르침을 듣던 이들
 분통이 터진다고 섣불리 밤에 돌아다니면, 넘어지거나 강도  이 “만상을 무시하는군요.”라고 입을 모았다. 선사가 외쳤
 를 당하기 십상이다. 청담 스님의 말씀을 첨부한다. “불교 신  다. “만상 가운데 홀로 드러냄이여! 에라이!”
 앙이란 인과를 철저히 믿는 자세다.” 차라리 바보가 되려면
 ‘큰바보’가 되어야만, 병신을 면한다.   늙어가면서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실감한다. 알고 보면, 사

          회생활의 전부다. 오로지 혼자 힘으로 일할 것 같은 프리랜서
 ●        도 결국은 인맥장사다. 직장인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제대
 제64칙     로 갈아탄 ‘라인’ 하나가 100명의 아버지보다 낫다. 명리학에

 자소의 법맥(子昭承嗣, 자소승사)  서는 권력을 기반으로 한 복잡다단한 이해관계를 ‘관성 (官星)’
          이라 부른다. 그리고 ‘관’은 나(비겁, 比劫)를 극(克)한다. 실제
 법안문익(法眼文益)은 장경혜릉(長慶慧陵) 밑에서 오랫동안   로 이와 같다. 윗사람에게 잘 보이려면 나의 욕망을 억눌러야
 공부했는데, 정작 법 (法)은 지장계침(地藏桂琛)에게서 이었  하고, 벼슬을 하려면 나의 진심을 숨겨야 하는 법이다.
 다. 자소(子昭)라는 수좌가 물었다.   자소는 법안의 배신을 비웃고 있는 듯하다. 하긴 상처 없는

 “스님께선 개당(開堂)을 하셨는데, 누구의 법을 이으셨습  영혼이 어디 있고 그늘 없는 나무가 어디 있으랴. 그래도 “나
 니까?” “지장이다.” “장경 선사가 들으면 서운해 하시겠는  는 그 자의 말을 알지 못한다.”며 옛 스승의 존재 자체를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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