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6 - 고경 - 2016년 10월호 Vol.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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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동안 아예 호칭을 생략한 채 본론부터 말하는 묘수를 발 반대하는 것은 좋은 일이나 어떻게 보살이라는 이름을 싫어
휘해서 피해갔다. 어색함이 느껴질 때마다 불편했다. 그리고 할 수 있느냐고, 그 이유를 알고 싶다고 했다. 나는 불교계에
몇 달이 지난 어느 날부터 나를 ‘이 선생’이라고 부르기 시작 서 일해 온 삼십년 동안 겪은 중에 몇 사례를 말씀드렸다. 대
했다. 그것도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뭐? 선생? 선생님도 아니 강만 밝히자면, 일 때문에 만난 비구스님들 중에 몇 분은 처
고? 내가 몇 살이나 더 많은데도? 게다가 내가 스님께 뭘 가 음부터 반말을 했고, 돈을 적게 준 경우도 있었다. 이보다 함
르쳐준다고 선생이람. 처음부터 불러달라는 대로 그냥 이름 부로 대하여,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모욕감을 느낀 경우도 있
부르면 될 걸 가지고 저 스님, 참 피곤하다.’ 이렇게 신경전을 었다. 그러면서 한결 같이 나를 보살이라고 불렀다. 이런 일이
치르며 불편을 참고 지낸 지 1년 반이 넘은 올 여름 어느 날, 쌓이다 보니 그 호칭이 불편해졌다. 내가 비구였다면 이분들
스님이 드디어 이름으로 나를 불러주었다. 처음이다. 너무 고 이 이렇게 막 대했을까. 그럴 리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사부대
마워서 감사를 드릴 뻔 했으나 입 꾹 다물고 아무 반응도 보 중이 평등하다는 그 스님의 발언은, 틀렸다할 수는 없지만 내
여주지 않았다. 그간의 무례에 대한 보답으로 적절한 조치였 겐 소용없는 말이다. 보살이라는 단어에 그저 죄송할 뿐이다.
다고 생각한다. 다 듣고 나서 스님은 “그런 일이 있었냐면서 한 사람의 비
세간에서 호칭은 인간관계의 기본이고 민감한 문제다. 이 구로서 대신 사과한다.”고 했다. 스님이 뭔데 비구를 대표하
게 정리가 안 되면 서로 간에 피곤해진다. 학교나 직장은 그 여 대신 사과하느냐, 는 말을 삼키며 그건 전혀 위로가 되지
래도 학년과 직위가 있기 때문에 그 질서에 맞게 부르면 될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그러고 나서 스님의 법문이 이어졌다.
것이다. 그러나 거의 평생을 독고다이로 살아온 나 같은 사람 좋다, 이해한다. 그러나 차별이라니, 그건 피해의식이다, 자기
에게는 부르는 사람도 곤란함을 느낄 수 있겠다. 이런 경우에 가 겪은 몇 사례를 가지고 비구 전체에 투사해서 일반화시킬
는 처음부터 당사자가 원하는 대로 불러주는 것이 예의고 배 수는 없는 일이다, 보살이라는 호칭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고
려다. 그래서 나는 호칭 문제에 있어 그 스님을 무례하다고 했다. 피해의식? 투사? 전문용어로 비판을 받는 와중에 ‘저
생각한다. 그러나 보살에서 선생으로, 선생에서 인혜 씨로 부 런 멋진 용어는 내 차지가 되었어야 하는 건데… 나만 과민성
르기까지 그 스님도 편치 않았을 것이다. 이 문제로 두어 번 명칭보살증후군으로 몰린 것도 뭐한데… 뭐 대응할 만한 더
설전이 오간 적도 있었으니까. 더더 전문용어가 없을까’ 생각하다가 “그냥 싫다니깐요. 싫어
아직 선생이라고 부르던 어느 날이었다. 세상의 온갖 차별, 요. 어쨌든 싫으니까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했다. 논쟁 중에
그 층위와 성격에 대해 몇 마디 나누다가, 스님이 내게 차별에 ‘어쨌든’이 나오면 이미 진 거라서 마음이 처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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