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9 - 고경 - 2017년 3월호 Vol.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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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얘기를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나라는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으니 쉽게 교
화할 수 있겠다.’라고 하고는, 그 사람을 출가시켰다.
어떤 사람이 먼 길을 가던 중 홀로 텅 빈 집에 묵게 되었다.
밤이 되자 귀신 하나가 죽은 시체를 지고 앞을 지나갔고, 여기서 불도를 추구하는 스님들의 반응이 매우 흥미롭다.
곧장 그 뒤에 다른 귀신이 따라와서 ‘왜 자기의 시체를 짊 ‘몸이 나’라고 생각하다가 그 몸이 통째로 바뀌는 통에 자신
어지고 가느냐?’면서 항의하였다. 두 귀신이 서로 자기 시 의 정체성에 심각한 혼란이 온 사람에게 무아(無我)의 진실에
체라고 다투던 중에 옆에 사람이 있음을 보고, 그 시체가 접근할 수 있는 적극적인 계기를 만들어주었으니 말이다. 이
누구의 것인지를 물었다. 귀신 앞에서 어떻게 말을 해야 할 후 『대지도론』에서는 이 사람이 번뇌를 다 끊고 아라한과를
지 고민하다가, 그 사람은 ‘앞의 귀신이 짊어지고 왔다.’고 얻었다는 것으로 결론을 맺고 있는데, 이는 매우 이상적인 경
솔직히 말하였다. 우에 해당될 것이다.
뒤에 좇아왔던 귀신은 이 말을 듣고 무척 화가 나서 그 사
람의 손발을 몸에서 떼어 땅에 던져 버렸다. 그러자 앞에 있 생명연장과 불교
던 귀신이 자신이 짊어지고 있던 시체에서 손발을 떼어 그 『대지도론』의 저자로 알려진 용수 보살은 지금으로부터 대
사람에게 꿰매어서 붙여 주었는데, 꿰매자마자 붙어 버렸 략 1900년 전에 태어난 인물이다. 용수 보살의 시대에는 귀신
다. 이런 식으로 신체를 뗐다 붙였다 하다 보니, 그 사람의 을 등장시켜 사람의 몸뚱이를 통째 이식하는 상상력을 발휘
몸은 거의 다 바뀌게 되었다. 게다가 귀신들은 그 사람의 버 한 것일 테지만, 오늘날 사회에서는 실제로 타인의 장기나 신
려진 몸뚱이를 다 먹어버린 다음 입을 닦고 가 버렸다. 체의 일부분을 이식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신체나 장기의 일
홀로 남겨진 그 사람은 ‘부모님이 낳아 주신 몸을 눈앞에서 부분을 이식할 경우 그 사람의 정체성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귀신들이 다 먹어버렸다. 지금 나의 이 몸은 모두 다른 사 일은 크게 없겠지만, 몸뚱이 전체를 이식하는 경우라면 그 사
람의 육체이다. 그렇다면 나의 몸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 람의 정체성에 중대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가?’라고 생각하였고, 무척이나 당황하여 만나는 사람마다 더군다나 요즘에는 생명 연장을 위해 신체의 일부 혹은 전
‘내 몸이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러다가 어떤 나라에서 스 신을 교체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상상이 아닌 현실로 다가오
님들을 만나 그간 겪었던 일들을 자세히 이야기하게 되었 고 있다. 복제 기술과 줄기 세포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는 추
는데, 이 얘기를 접한 스님들은 모두 ‘이 사람은 자기 몸에 세로 미루어본다면, 위의 『대지도론』에서 나온 사례가 앞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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