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7 - 고경 - 2017년 4월호 Vol.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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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만두였다.” 떡을 먹어도 만두를 먹어도 심지어 아무 것도 먹지 못해도 만
족할 수 있는 마음의 세상일 것이다. 부처와 중생이 따로 없
조사선에서 가장 난해하고 뚱딴지같은 개념이 바로 돈오(頓 는 세상. 하늘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는 세상. 아, 내가 없는
悟)다. 단박에 깨닫는다는 것인데, ‘수행은 고행’이라는 통념에 세상. 누구도 미워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죽지도 않는 세상.
익숙한 사람들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다. 여하튼 선사들은
즉각 깨달을 것을 요구한다. 일정한 단계나 시간을 인정하지 제83칙 — ●
않는다. 헛것이기 때문이다. 성철 스님은 “정법 (正法)을 가로막 도오의 간병(道吾看病, 도오간병)
는 맹독”이라며 지해 (知解)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지해란 알음
알이이고 개념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로 문제를 풀어가려는 시 위산(潙山) : 어디서 오는가?
도다. 그러나 깨달음에 대한 사유는 그저 생각일 뿐이다. 도오(道悟) : 아픈 사람들을 돌보다 왔습니다.
사유(思惟)란 단어는 꽤나 그럴 듯 하고 있어 보이지만, 삶 위산 : 몇 사람이나 병들었던가?
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마음에 무언가를 자꾸 섞고 얽는 도오 : 병든 자도 있고 병들지 않은 자도 있습니다.
일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봐야 나의 생각만 늘어날 뿐 너의 생 위산 : 병들지 않은 자란 원지두타(圓智頭陀)가 아니겠는가?
각과는 갈수록 멀어진다. 진실에 다가가지 못하고 세상과 화 도오 : 병들거나 병들지 않는데 전혀 간여치 않는 이를 속히
해할 수 없다. 이르시오 속히 이르시오.
돈오는 어느 날 무언가를 보거나 들었을 때 갑자기 이뤄진 위산 : 말할 수 있더라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다. 영운지근은 복사꽃이 피는 걸 보고 깨쳤다. 향엄지한은 빗
자루로 마당을 쓸다가 돌이 대나무에 부딪히는 소리를 듣고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라는 시구가 있
깨쳤다. 동산양개는 강을 건너다가 수면에 비친 자기의 모습 다.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온정이 말살되어 가는 시대가 배경
을 보고 깨쳤다. 천녕범기는 성루의 북소리를 듣고 깨쳤다. 청 이다. 일정하게 잔혹하고 일정하게 비열한 인간들이 서로 속
허휴정은 닭이 우는 소리에, 고봉원묘는 목침이 바닥으로 굴 이고 물어뜯으며 만들어가는 현실을 비판하는 시다. 그들의
러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깨쳤다. 악마성은 문명과 교육이 만들어줬다. 더 좋은 데에 살고 더
운문이 이야기하는 성색에 힘입어 그들은 성색 너머의 세 많이 배울수록 탐욕스럽고 간악하다. 국정농단에 연루된 인
계로 달아났다. 호떡이 순식간에 만두로 변하는 세상이란 호 물들의 다채로운 갑질과 배신과 꼼수의 활극은 거대한 악(惡)
● 고경 2017. 04. 54 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