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5 - 고경 - 2017년 4월호 Vol.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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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칙 — ● 이라 짐작된다. 스님들이니 요란하고 난잡한 술판을 벌이진
현사가 마을에 이르다(玄沙到縣, 현사도현) 않았을 것이다. 충분히 온당한 ‘법회’였을 터임에도 현사는 철
저히 부정하고 있다. 아무리 맛나고 값진 음식을 내놓는다 한
현사사비(玄沙師備)가 포전현(蒲田縣)에 갔다. 거기서는 갖가지 들, 한낱 나무토막이고 쇳덩어리인 불상(佛像)이 그걸 어떻게
연희(백희, 百戱)를 베풀어 선사를 환영했다. 다음날 소당장로(小 받아먹을 것인가.
塘長老)에게 현사가 물었다. 주지 (住持)란 단어는 당나라 백장회해(百丈懷海) 선사가 처음
“어제의 그 시끄러움은 다 어디로 갔는가?”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
소당이 말없이 가사 자락을 들어보였다. 현사가 말했다. 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는 명언을 남긴 스님이다. 현재는 전해
“아무 쓸모도 없을 줄 알았다.” 지지 않지만 그는 청규(淸規)를 만들어 출가자들의 노동과 자
급자족을 독려했다. 하여 탄탄한 사원경제를 이뤄 황제들에
『조당집(祖堂集)』 권10에는 현사사비의 품성에 대해 이렇게 의해 자행된 불교파괴인 법난(法亂)에도 선종 사찰은 크게 타
기술하고 있다. “모든 행동은 모범적이었으며 풍상(風霜)을 싫 격을 받지 않았다. 절에 불상을 따로 두지 않은 것도 백장이
어하지 않았으니 더위와 추위를 어찌 피했으랴. 선사의 기틀 만든 선가의 전통이다. 도를 깨달아 간직하고 있는 주지와 주
이 순일함을 보고 매양 경탄하다가 마침내는 비두타(備頭陀) 지의 법문이 부처님을 대체했다. 사람이 부처여야만 사람을
라고 불렀다.” 두타란 범어 드후타(Dhuta)의 음역(音譯)이다. 의 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식주에 대한 집착을 완전히 버리고 온전히 도를 닦는 일에 온
생명을 바친다는 뜻이다. 현사가 얼마나 세속의 물욕에 초연 제82칙 — ●
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운문의 빛과 소리(雲門聲色, 운문성색)
요즘에야 개신교의 전유물인 양 돼버렸지만 ‘장로’는 본래
불교의 용어였다. ‘길 장(長)’자에 ‘늙을 로(老)’ 자를 써서 지혜 운문문언이 대중에게 말했다.
와 덕망이 높은 노스님을 가리켰다. 옛날 선종에서는 주지스 “소리를 들어 도를 깨닫고 빛을 보아 마음을 밝힌다.”
님을 이렇게 불렀다. 곧 소당 장로가 백희를 주관한 호스트였 손을 들고는
을 것이다. 가사 자락을 들어 보인 연유는 ‘성대한 잔치를 연 “관세음보살이 돈을 가지고 와서 호떡을 샀다.”
것은 모두 부처님 제자로서 당연한 도리’라는 입장을 알린 것 손을 내리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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