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3 - 고경 - 2017년 7월호 Vol.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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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어록의 뒷골목
제89칙 — ●
동산의 풀 없음(洞山無草, 동산무초)
할미꽃도 꽃인데,
내가 어떻게 꽃이 아닐 수 있나 동산양개(洞山良介)가 대중에게 보였다.
“첫가을 늦여름에 여러분은 동쪽이건 서쪽이건 모름지기 만 리
에 한 치의 풀도 없는 곳을 향해 떠나야 한다.”
글 : 장웅연
다시 말했다.
“그 만 리에 한 치의 풀도 없는 곳을 어떻게 가야 할까?”
석상경저(石霜慶諸)가 답했다.
“문을 나서기만 하면 그대로가 풀밭입니다.”
대양경현(大陽警玄)이 답했다.
호접지몽(胡蝶之夢)은 주객의 소멸에 관한 이야기다. 장자 “설령 문을 나서지 않는다 해도 역시 풀이 끝없이 무성하리라.”
(莊子)는 “꿈속에서 나비로 날았는데 내가 나비였는지 나비가
나였는지 분간을 못할 지경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나’와 ‘떠난다’는 생각만큼이 망상이요 ‘떠나겠다’는 생각만큼이
‘너’의 경계가 사라져 굳이 나를 내세우거나 너를 밀어낼 필요 고집이다. 떠나지도 말고 머물지도 말자. 한걸음 나아가 ‘떠나
가 없는 물화(物化)를 꿈꿨다. 형체 없는 달빛이 되어 여기저기 지 말자’는 생각으로 떠나지 말자. ‘머물지 말자’는 생각 안에
를 나돌아 다니고 싶어 했다. 길가를 뒹구는 돌멩이는, 뒹구 갇히지 말자.
는데도 슬퍼하지 않고 기죽지도 않는다.
천하에 따로 대단한 존재는 없다. 대단해 보이거나 대단한 제90칙 — ●
척하는 존재가 있을 뿐. 우리는 그가 쏟아낸 말에만 현혹될 앙산의 삼가 아룀(仰山謹白, 앙산근백)
뿐, 그가 눈 똥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앙산혜적(仰山慧寂)이 꿈에 미륵불의 처소에 가서 제2좌에 앉았
다.
어느 존자가 “오늘은 제2좌가 설법할 차례요.”라고 말했다.
● 고경 2017. 07. 50 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