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8 - 고경 - 2017년 7월호 Vol. 51
P. 58
선사, 주인공의 삶
졌다. 지금은 귀국하여 늙은 엄마한테 의지하고 있단다.
ㄱ과 ㄴ은 30년 넘게 한 직장에 다니는 전문직으로, 멀리서
엄마 덕분에 보면 우아한 백조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떠 있기 위해 발이 남
엄마 때문에 아나지 않을 지경이다. 그들은 친정엄마 없었으면 30년 직장
생활은 꿈도 못 꿨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둘 다 엄마와 한
동네에 산다. 애들도 봐주고 반찬도 해주어서 여러모로 도움
글 : 이인혜
을 받았다며 ㄱ이 결론짓듯 말했다.
“내가 이만큼 사는 것도 다 엄마 덕분이야.”
내가 말했다.
“내가 이거밖에 못 사는 것도 다 엄마 때문이야.”
누구 말이 더 맞을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둘 다 맞는
이달 초에 옛 친구들을 만났다. ㄱ은 만난 지 1년 남짓 되었 말이다. 최순실을 엄마로 둔 정유라도 작년 언제쯤까지는 엄
고, ㄴ은 3년, ㄷ은 거의 10년 만이다. ㄷ가 외국에서 살다 왔 마 덕분에 남들이 누리지 못하는 호화를 누렸고, 이제는 엄
기 때문에 이렇게 모이기는 모처럼 만이다. 2년 전 엄마가 돌 마 때문에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검찰에 불려 다니는
아가셨을 때 연락을 못했기에 친구들의 핀잔으로 대화가 시작 몸이 되었으니 말이다.
되었고, 나는 그들 부모님의 안부를 물었다. 그러고는 그동안 며칠 뒤에 또 다른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열불이 나서
어떻게 지냈는지, 여자들의 구구절절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집에 앉아있을 수가 없다고 같이 산책이나 하자는 거였다. 만
가장 오랜만인 ㄷ에게 모두의 관심이 쏠렸다. 그녀는 결혼 나자마자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딸 때문이란다. 대학생인
하고부터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그 시어머니에게는 움직 딸은 고등학교 때까지 이렇다 할 취미나 목표가 없었고 입시
일 수 없는 사상이 하나 있었으니, 이른바 남존여비 사상이 가 코앞인데도 전공을 결정하지 못했다. 할 수 없이 친구가 취
다. 덕분에 그녀는 남편도 ‘모시고’ 살았단다. 시어머니 사상의 직 잘 되는 과를 권했고 딸은 엄마 말을 듣고 진학했다. 문제
세례를 듬뿍 받은 남편은 외국으로 이민을 가서도 한 점 달라 는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대학 들어와서야 확
진 것이 없었다. 이런저런 문제로 많이 다투면서도 아이들 때 인한 것이다. 2학년이 되도록 적응하려고 노력했으나 잘 되지
문에 참고 살다가 아이들이 졸업하고 취직하자 남편과 헤어 않자 엄마 탓을 하는 바람에 모녀간에 가끔 전쟁을 치른단다.
● 고경 2017. 07. 56 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