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7 - 고경 - 2017년 7월호 Vol.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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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같은 한 몸’이라고 말했는데 참으로 대단한 경지 아닙니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나’라고 하는 육체와 영혼을 초

 까?”      월한 승조는 그래서 무시무시한 혹형 앞에서도 평온할 수 있
 그러자 남전이 뜰 앞의 모란꽃을 가리키며 말했다.   었던 것이다.
 “대부여, 요즘 사람들은 이 한 송이의 꽃을 보고는 마치 꿈과   육긍(陸亘, 764-834)은 당나라 헌종을 모신 벼슬아치다. 관
 같이 여기는군요.”   리들의 잘못을 감시하고 바로 잡는 어사대부(御史大夫)였다.
          지금의 감사원장쯤 된다. 남전스님 문하에서 오래 공부하며

 승조(僧肇, 384~413)는 경전 한역의 선구자 구마라집의 제자  지혜를 체득한 거사로 알려진 그는 승조스님의 『조론』을 연구
 다. 18세에 문하에 들어와 스승의 번역을 도왔다. 그의 『주유  하다가 퍼뜩 깨달은 바가 있었다.
 마경』은 『유마경』 연구의 필독서로 명성이 높다. 황제는 이 젊  “‘천지는 나와 한 뿌리이며, 만물은 나와 한 몸[天地同根 萬物

 은 천재를 갖고 싶어 했다. 재상의 자리를 걸고 환속해줄 것  一體]’이라는 구절이 나오던데, 매우 훌륭한 말씀이군요.”
 을 권했으나 승조는 ‘잠꼬대 같은 소리’라며 일축했다. 괘씸죄  평소 친분이 도타웠던 스승을 찾아가 어렵사리 입수한 ‘한
 에다가 이런저런 모함에까지 엮여서 승조는 결국 참수형을   소식’을 으스댔다. 묵묵부답하던 스님은 뜰 안에 핀 모란꽃
 당했다. 옥중에서 1주일간의 말미를 얻어 『조론(肇論)』을 쓰고  한 송이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위와 같이 한마디 일
 는 입적했다. 그리고 엄청난 열반송을 남겼다.   렀다. 대수롭지도 않은 깨달음에 호들갑을 떤다는 무언의 호

 “사대가 원래 주인이 없고 오온이 본래 공하다. 번쩍이는 칼  통이다. 추상적이고 현학적인 불교에 대한 비판이다. 우리는
 날 앞에 머리를 내미니 마치 봄바람을 베는 것 같구나.”  이미 또한 언제든 만물과 하나다. ‘나’라고 하는 탐욕과 열등
 『조론』의 핵심적인 개념이 물불천론(物不遷論)이다. ‘사물은   감만 없으면 내가 꽃이다. 하물며 할미꽃도 꽃인데, 내가 어떻

 움직이지 않는다.’   게 꽃이 아닐 수가 있나.
 “강물이 바다로 흘러간다 해도 흐르는 것이 아니며 봄날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고 해도 오르는 것이 아니며 해와 달
 이 하늘을 돈다고 해도 돈 것이 아니다.”   장웅연   _ 집필노동자.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 조사선(祖師禪)에 관
          한 수업을 몇 개 들으며 불교와 인연을 맺었다. 2002년부터 불교계에서 일하고 있다. ‘불교신
 뚱딴지같은 논리처럼 보이지만 움직이고 오르고 도는 현상
          문 장영섭 기자’가 그다. 본명과 필명으로 『길 위의 절(2009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
 을 바라보는 내가 없다고 가정하면 충분히 납득이 된다. 아무  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선문답』, 『불행하라 오로지 달마처럼』, 『눈부시지만, 가짜』,
          『공부하지 마라-선사들의 공부법』, 『떠나면 그만인데』, 『그냥, 살라』 등의 책을 냈다. 최근작
 도 없는 허공에서 자동차가 달릴 때, 자동차가 달리고 있다고   은 『불교에 관한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물음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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