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1 - 고경 - 2017년 7월호 Vol. 51
P. 61

그날도 서로를 탓하며 옥신각신 하던 중에, 딸이 “이게 다 엄  냐에 따라 성격이 정해지고, 성격은 인생을 좌지우지한다. 우

 마 때문이야. 엄마가 내 인생 망쳐놨어!” 하면서 울더란다. 화  는 거 말고는 별다른 발언권이 없는 나이에 어찌 항거해볼 수
 가 머리 꼭대기까지 오른 친구가 “뭐? 니가 몇 살인데 인생을   도 없이 엄마에 의해서 많은 것이 결정되는 것이다.
 망쳐, 이 ㄴ아!” (『고경』의 품격을 고려하여, 이어지는 친구의 발언은 생  괴로운 인생은 누구 탓인가. 불교에 따르면 갓 태어난 아기
 략한다.) 하고는 내게 전화를 한 것이다.   도 백지처럼 순결하지는 않다. 이미 번뇌에 오염된 채로 어마
 이 딸도 고비를 넘기고 제 갈 길을 찾아 자리 잡고 살다보  어마한 전생의 업을 짊어지고 나온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현

 면 “내가 이만큼 사는 것도 다 엄마 덕분이야.”라고 말할 날이   생에 겪는 이 모든 불편함에 대해 부모 탓만 할 수는 없다. 그
 있을 것이다.  러나 무지한 중생의 처지에서 볼 때, 어린 것이 무슨 죄가 있
 이렇게 모녀관계는 ‘덕분에’와 ‘때문에’ 사이 어디쯤엔가 있  다고,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나는 엄마에게 ‘낳아주셔서 감

 다. 다겁생에 빚지고 빚갚는 수고로운 관계이다. 나는 윤회나   사합니다.’하는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전생 이야기를 들으면 아직도 긴가민가 한다. 그것이 사실이라   잊으시고 기르실 때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부모은중경』
 하더라도 전생의 나를 이생의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데 다음   에서 따왔다는 그 노래를 부를 때 왠지 모르게 코끝이 찡해
 생에 개가 되든 벌레가 되든 무슨 상관이냐는 생각이다. 그래  졌다가도, 이내 ‘그러게, 뭐 하러 애는 낳아놓느냐고. 이 고해
 도 다음 생에 엄마를 만나 다시 빚지고 빚갚는 일을 반복한다  바다에….’ 이런 생각만 들었다.

 고 상상하면 벌써부터 징글징글하다. 삼생을 두고 생각할 것   며칠 전 『멀고도 가까운』(레베카 솔닛, 김현우 옮김, 반비, 2016)
 없이 이번 생만 해도 엄마가 딸에게 미치는 영향은 심대하다.  이라는 책을 읽다가, 저자가 치매 걸린 엄마 때문에 전쟁 같은
 사람은 대부분 유아기에 성격이 결정된다고 하는데, 아이   나날을 보내는 대목에서 엄마 생각이 났다. 미국 이야긴데 어

 성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환경은 역시 엄마이다. 한 예  쩜 그렇게 여기랑 다를 바가 없을까.
 로, 아이는 기저귀를 갈아주는 엄마의 표정을 보며 느낌을 각  아들도 있는데 돌봄은 딸 몫인 것도 같고, 치매 증상도 거
 인하고 반응한다. 매번 찡그리며 코를 막는 엄마였다면 아이  의 같다. 집 안에서 자기 방을 찾지 못하고, 동네에서 길을 잃
 는 뭔가 잘못했다는 죄책감에 빠지고 눈치 보는 사람으로 성  는데도 밖으로 뛰쳐나가려고만 했다. 의심이 많아져서 돈 7천
 장하기 쉽단다. 싸자마자 갈아주면 결벽증이 되고 뭉개도록   원 어디다 숨겼냐며 간병인을 쫓아낸 적도 있고, 공격성이 발

 놔두면 분별없는 사람이 된다는 설도 있다. 빼다 박은 유전자  현되어 동네 분에게 전화해서 욕을 한 적도 있다. 사건사고가
 를 물려받은 것으로도 모자라 엄마가 똥을 어떻게 치워줬느  연발되던 시절을 지나는 동안 엄마는 점점 쇠약해져 갔다. 힘



 ● 고경  2017. 07.                                            58 59
   56   57   58   59   60   61   62   63   64   65   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