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1 - 고경 - 2017년 8월호 Vol.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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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사상을 이해하면 매우 자연스러운 내용으로 받아들이게 에서 금진 (金塵)이라고 한다. 금진에 비해 1/7로 더 작은 먼지
된다. 화엄종의 현수법장이나 신라의 의상대사가 이해하는 법 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미진 (微塵)이다.
계의 세계 역시 이와 같은 맥락으로 설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미진과 모래알의 크기는 실로 엄청난 차이가
예를 들어 의상대사는 윌리암 블레이크보다 1200년 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광활한 우주에 비교하면 그 차이
활동했던 해동화엄의 초조다. 7세기 신라에서 활동했던 의상 란 부질없는 것이니 미진이나 모래알이나 크게 다를 바는 없
대사는 법성게 (法性偈)라는 게송을 통해 법계의 실상을 압축 을 것이다. 의상대사는 시간적으로도 ‘무량원겁즉일념 (無量遠
적으로 표현했다. 법성게는 치밀하게 설계되어 한 폭의 만다 劫卽一念)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이라고 했다. 아득한
라 같은 느낌을 주는데, 여기서 의상대사는 ‘일미진중함시방 영겁의 시간이 찰나의 한 생각과 다르지 않으며, 찰나의 짧은
(一微塵中含十方)’이라고 했다. 미세한 먼지 속에 시방세계, 즉 순간이 그대로 아득한 영겁의 시간이라는 것이다.
우주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화엄에서 말하는 ‘미진 (微塵)’은 모래알과 세상, 미진과 시방세계는 개체와 전체의 문제이기
블레이크가 말한 모래알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미세한 도 하지만 달리 보면 개체와 개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 알의
것이다.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고, 미세한 먼지 속에서 우주를 볼 수
우리가 보통 먼지하면 떠올리는 것은 창문 사이로 쏟아지 있다면 작은 개체와 전체는 둘이 아니다. 그래서 의상은 ‘일즉
는 햇살에 떠다니는 먼지를 생각한다. 그런 먼지를 일광진 (日 일체다즉일 (一卽一切多卽一)’이라고 했다. ‘하나가 곧 전체이고,
光塵) 또는 극유진(隙遊塵)이라고 한다. ‘햇살에 일렁이는 먼지’ 전체가 곧 하나’라는 것이다. 이처럼 개체와 전체, 개체와 개체
와 ‘작은 틈새로 떠다니는 먼지’라는 뜻이다. 우리 눈에 보이 의 관계는 존재의 관계성과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것으로 화
는 일광진은 소의 털끝에 앉는 크기라고 해서 달리 우모진 (牛 엄의 핵심적 개념이다. 그것을 설명하는 것이 법계삼관(法界三
毛塵)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우모진보다 1/7이나 더 작은 먼 觀)에서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주변함용(周徧含容)’이다. 주변
지가 있으니 바로 양모진 (羊毛塵)이다. 양의 털끝에 앉는 먼지 함용은 전체와 개체, 개체와 개체가 어떻게 상호 연결되어 있
라는 뜻이다. 그리고 양모진보다 다시 1/7 크기의 먼지가 있 고, 상호 소통하고 있는가를 설명한다.
으니, 토끼 털 끝에 앉는 먼지라는 뜻에서 토모진 (兎毛塵)이
라고 한다. 토모진 보다 다시 1/7 크기의 먼지가 있으니 물을 달 하나와 천강의 달그림자
통과하는 먼지라는 뜻에서 수진 (水塵)이라고 한다. 수진보다 주변함용관에서 ‘주변(周徧)’이란 두루 퍼진다는 뜻이고, 반
다시 1/7 크기의 먼지가 있으니 금을 통과하는 먼지라는 뜻 면 ‘함용(含容)’이란 하나로 모아지는 수렴을 의미한다. 성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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