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 - 고경 - 2017년 11월호 Vol.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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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로 앉아서만 8년간 수행과 선을 한 것이다.                                            조계종 종정직을 흔쾌히 수락했다.

           그러나 이 같은 철저한 수행 속에서도 1930년 진주중학을                                      불교계에는 성철 큰스님에 대한 여러 가지 ‘신화’가 있다. 속
         졸업, 35년 득도한 뒤 독학으로 영 (英), 독(獨), 불(佛), 일어(日                            인은 잘 만나주지 않는다든가, 신문에 ‘인터뷰’ 같은 것을 허
         語)에 능통하다. 요즘도 <뉴스위크>, <타임> 지 등은 물론 해외                                 락해본 일도 없다든가 하는 것도 그런 신화의 한 대목이지만
         신간도 탐독, 사회현상과 타종교에 대한 이해가 깊어 주위에                                      그의 신비성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8년 동안 한 번도 드

         선 ‘대박(大博)’하다는 평을 하고 있다. 이밖에 35회(1회는 3개                                러눕지 않은 ‘장좌불와(長坐不臥)’의 수행을 쌓았다는 데 있다.
         월)의 수선안거(修禪安居)를 성취했으며 선승으로서 불교계에                                      그뿐 아니라 그는 영 (英), 독(獨), 불(佛), 일(日), 중국어(中國語)
         는 그의 괴팍스런 선문답과 대중을 멀리하는 두문불출로 잘                                       등의 5개 국어에 능통하고, ‘타임’ 지 (誌)를 정기구독하며, 물
         알려져 있다. 현재는 5천여 권의 장서가 둘러싸인 해인사 백                                     리학, 심리학, 심령학 등 현대 학문들을 두루 섭렵하고 있다.

         련암에 머물고 있으며 종정에 취임해도 계속 백련암에 있을                                         이같이 좀처럼 밖으로 노출되지 않는 깊고 높은 수행생활은
         것으로 예상된다.                                                             많은 일화와 함께 그의 존재를 ‘신비의 베일’ 속에 묻히게 했다.
           신임 이 종정은 새 종헌에 따라 앞으로 10년간 종정직에 머                                     그 성철스님이 은거 (?)한 아란야(阿蘭若, 거처)는 불가의 불법
         물며 중임이 가능하다.                                                          승 삼보 중 법맥의 정통을 이어오는 조계종 법보종찰(法寶宗
                                                                               刹)인 해인사 경내의 조그만 암자 백련암-. 해인총림(선원)으로

           <중앙일보> 1981년 1월 19일 5면                                              부터 가파른 산길을 1㎞나 올라야 하는 가야산 중턱이다.
           조계종 종정 이성철 스님을 만나러 갔더니                                                울창한 송림 (松林)을 뚫고 가파른 오솔길을 따라 오르기 약
           한국불교 대표하는 ‘수행의 표상’                                                  40분-. 암자가 바라보이면서 문득 성철스님을 만나려면 꼭 지

                                                                               켜야할 전제조건이라는 ‘삼천배’를 못하고 올라온 것이 못내
           고승을 친견하기 위한 길은 백팔번뇌에서 헤어나는 일만큼                                      마음에 걸렸다.
         이나 어렵고 험난했다.                                                            그러나 이제 종정직도 수락했으니 기자의 친견을 물리치지
           오늘의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수행의 표상인 선승이며 학                                       않겠지 하는 일말의 희망을 안고 단숨에 경내로 들어가 선방
         승이기도 한 이성철 불교조계종 해인총림 방장스님-.                                          의 문을 두드렸다.

           올해로 고희 (古稀)를 맞은 그는 최근 불교계 정화 등으로                                      젊은 수좌의 호의로 스님이 칩거하는 염화실 옆 요사(寮舍)
         종단에 들이닥친 심각한 위기를 의식, ‘상징적 존재’로 추대된                                    방으로 안내됐다. 친견 목적을 밝히자 잠시 염화실로 건너 갔



         ● 고경                                           2017. 11.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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