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9 - 고경 - 2017년 11월호 Vol.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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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법문 다시 보기
          화엄십현문은 그와 같은 상호의존적인 존재의 관계성, 끝없는

          연기 (緣起)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다. 이번 호에 들어갈 문은
 나를 버리고 너에게 들어가기  세 번째에 해당하는 ‘일다상용부동문(一多相容不同門)’이다.

            ‘일다(一多)’에서 ‘일(一)’은 개체를 말하고, ‘다(多)’는 전체 또
 - 상용(相容), 상입(相入), 상즉(相卽)
          는 개체 밖에 존재하는 일체를 의미한다. 개체와 전체는 서로
          분리되어 있거나 고립되어 있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
 글 : 서재영
          이고 담는[容] 관계에 있다. 이런 관계를 화엄에서는 ‘상용(相
          容)’이라고 한다.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고 담는다’는 뜻이다.
          후미진 곳에서 외롭게 피는 들국화조차도 사실은 제 혼자 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쩍새는 봄부터 울었고, 천둥과 먹구
          름도 제 할 일을 했기에 비소로 한 송이 들국화가 피어날 수
 들국화의 외로운 향기와 서로 포용하기[相容]  있었다.
 산과 들이 아름답게 물드는 시월이다. 이맘때가 되면 아무
 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후미진 산비탈에도 노란 들국화가 피

 어난다. 저 혼자 힘겹게 꽃을 피운 고단함 때문일까, 들국화의
 향기에는 진한 외로움이 배어난다. 누구도 그곳에 고운 꽃이
 자라고 있는지 몰랐기에 들국화는 어떤 이의 손길도 없이 저

 혼자서 그렇게 꽃을 피웠다.
 하지만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울고,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울었다고 시인은 노래한다. 아무
 도 모르는 곳에서 혼자 피는 외로운 들국화조차도 사실은 온
 우주의 동참과 배려 속에 피어났다는 것이다. 시인의 인식은

 화엄 (華嚴)의 사유로 이어져 있다. 모든 존재는 서로 기대고 있
 으며, 전체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화엄법계의 세계다.



 ● 고경  2017. 11.                                            2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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