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1 - 고경 - 2017년 12월호 Vol.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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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어록의 뒷골목
 마음을 알고 경계를 깨달아라

 마음을 알고 경계를 깨달으면 선하(禪河)가 고요하리라
          ‘여릉의 쌀값’에

 우선 여기 나오는 총림 (叢林)은 수행자들이 한데 모여 있  기여하기 위해
 는 모습을 마치 나무가 우거져 숲을 이루는 형상에 비유한 것
 이다. 이는 당에서 시작된 총림 제도를 언급하는 것으로 보인
          글 : 장웅연
 다. 총림 속에서 부지런히 배우되, “병든 눈으로 허공 꽃을 오
 인하지 말라”는 당부가 이어진다. 원래는 없던 허공 꽃에 대해
 그것의 색깔을 논하고 꽃잎의 숫자를 세려고 한다면, 아마 평

 생 동안 해도 다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허공 꽃은 병든
 눈에서만 보일 뿐 실제로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앞서 말했던 공(空)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2015년 8월 경북 문경에 갔었다. 어떤 노스님의 수행담을
 이와 같은 공에 대한 자각을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한번   인터뷰해서 불교신문에 싣기 위한 길이었다. 봉암사 근처에
 펼쳐보라는 것이 고성화상가, 그리고 연수선사가 지닌 의도가   있는 외딴 암자에 올랐다. 40년 이상 은둔해온 스님을 거기서

 아니었을까. 다만 우리의 일상은 너무도 생생하고 긴박하므  만났다. 당신은 혼자 나무하고 밥 지어먹고 예불하고 참선하
 로, 이런 자각을 대입해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허공   며 살았다. 자동차도 휴대폰도 상좌도 없었다. 거처는 법당이
 꽃 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장(場)이 바로 우리의 일상이므로,   라 하기 민망한 폐가였다. 타인과의 교유라고는, 가끔 용돈을

 바로 이곳에서 출발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주기 위해 문중(門中) 후배들이 보내는 인편이 전부인 듯했다.
          기자와는 얘기하지 않겠다는 걸 간곡히 설득해 몇 마디 얻어
          들었다. 그래도 신문 한 개 면을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한 분량
          이었다. 절에서 내려온 뒤 재차 전화해서 꼬치꼬치 캐물었고
          통화를 녹음했다. 그야말로 글감을 싹싹 긁어모은 셈이다.

 박인석   _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영명연수 『종경록』의 일심사상 연  폐관(閉關)의 직접적인 이유는 벼락을 맞았기 때문이었다.
 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의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불교전서>
 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1972년 가을비가 내리던 날이었고 우산을 들고 처마 밑에 앉


 ● 고경  2017. 12.                                            48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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