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2 - 고경 - 2017년 12월호 Vol.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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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있던 스님은 낙뢰사고를 당했다. 고압전류에 온몸이 파헤 그때 오라고.’ 한창 젊은 사람들이 얼른 돈을 벌어야지 어설픈
쳐져 며칠간 의식을 잃은 채 누워있었다. 뻣뻣이 굳어 눈 감 생각으로 참선한답시고 나서면 안 돼. 한번 시작하면 10년 이
은 육신에 다들 죽은 줄 알았다. 다행히 정신을 되찾았는데, 상 해야 하는 일인데. 만약 깨닫지 못하면 돈도 못 벌고 청춘
최초로 돌아온 ‘제정신’은 허무감이었다. ‘그간의 수행이 죄다 다 지나가고 남은 건 없고…, 얼마나 원통하겠어. 깨달음이란
헛공부였구나!’ “나에겐 죽음을 극복할 힘이 없다”는 걸 절감 인생무상을 뼈저리게 느낀 사람, 간절하게 죽음의 공포로부
했고, “이른바 생사(生死)의 경계를 ‘진짜로’ 넘어보자”고 마음 터 벗어나고 싶은 사람에게서만 가능한 법이야.”
먹었다.
그렇게 43년이 흘렀다. 깨달음의 경계를 나에게 설명할 때 석두희천(石頭希遷)이 약산유엄(藥山惟儼)에게 물었다.
당신은 시종일관 어린아이 타이르듯 했다. ‘나는 한 소식을 했 “너 거기서 뭐하냐?”
다’는 자부심으로 꽉 차 있는 느낌이었다. 소통이 될 리가 없 “아무 것도 안 하는데요.”
었다. 그의 선 (禪)은 몹시 드높았는데, 나는 그 드높은 선을 끌 “그냥 한가롭게 앉아있는 거로구나.”
어내려 독자들이 최대한 알아먹을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하는 “한가롭게 앉아 있다면, 하는 일이 있는 겁니다.” <선문염송>
처지였다. 그에게는 언어가 필요 없었지만 나는 언어가 있어야
만 먹고 살 수 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터뷰는 게재되지 무심(無心)이란 아무 것도 담아두지 않는 마음이다. ‘앉아
못했다. 어른은 세상만이 아니라 종단도 등지고 있는 상태여 있다’는 생각을 마음에 담아두게 되면, 필시 ‘앉아 있지 못하
서, 승적을 상실한 지 오래였다. 결국 밥벌이를 위해 그의 언 게 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에 빠지거나 ‘왜 너만 누워 있
어를 따내려고 공들였던 나의 수고와 수모는 고스란히 허사 느냐’는 질투에 휩쓸리게 마련이다. 어떤 일을 하든 사실 ‘나
가 됐다. 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마음이어야만, 일이 고통스럽지
다만 참선에 대한 역설 (逆說)만은 여전히 솔깃하다. 군더더 않고 사람이 나를 다치게 하지 못한다. 그저 되는 대로 살고
기 없는 ‘날말’로 느껴졌는데, 내가 뱉은 말이 아닌데도 자못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삶보다 속 편한 삶도 없는 것이다. 자
후련했다. “참선한다고들 하는데, 웬만해선 진짜 제대로 된 참 신의 본성으로 돌아가기 위한 참선은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
선을 하기란 어렵지. 누가 참선을 배우고 싶다고 찾아오면 이 은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돌부처의 마음만이, 길가에 뒹
렇게 말해주고 돌려보내. ‘세상에서 해볼 것 다 해보고 더 이 구는 구멍 난 비닐봉지의 마음만이, 아무 것도 아닌 마음만
상 하고 싶은 일이 없을 때, 오직 죽을 일밖에 안 남았을 때 이 참선을 즐길 수 있고 죽음을 버텨낼 수 있다. ‘그냥’ 살려
● 고경 2017. 12. 50 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