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6 - 고경 - 2017년 12월호 Vol.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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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볼 수 있다. 【물음】 중생의 업과(業果)와 종자(種子)의 현행(現行)이 오
위의 『조당집』 내용을 보면 고성화상은 생애가 알려진 분 랜 겁 동안 훈습된 것은 마치 아교와 옻처럼 쉽게 떨어지
은 아니었고, 다만 선사의 법명이 법장이었고, 그가 지은 490 지 않는데, 어째서 일심 (一心)을 깨닫기만 하면 단박에 그
자의 노래 1수가 전해지고 있으며, 선사가 쓴 『대승경음의』라 것을 끊고 성불할 수 있는가?
는 책이 유통되고 있다는 점 정도만 알 수 있다. 인용문에 나
오는 해장(海藏)은 원래 ‘바다 속 용궁에 있는 곳간’을 뜻하는 【답함】 만약 마음과 경계가 실재하고 인 (人)과 법(法)이 공
데, 여기서는 부처님 말씀을 전하는 책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하지 않다고 집착하면 비록 만겁 (萬劫)을 수행한다 해도
생각된다. 아무튼 생애보다도 그 노래로 더 유명했던 고성화 끝내 도과(道果)를 증득하지 못한다. … 그러므로 『고성화
상의 가르침이 어떤 것인지 한번 살펴보자. 상가(高城和尙歌)』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
마음을 알고 경계를 깨달아라 만약 경계를 깨닫고 곧 마음을 알면
『명추회요』 상(141-142쪽)을 보면, 『종경록』 18권-4판의 내 만법이 모두 다 건달바성의 신기루와 같으리라
용을 ‘일심 (一心)만 깨달으면’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하는 부분
이 있다. 바로 여기에서 고성화상의 노래가 제일 먼저 등장한 이 하나의 ‘물음-답합-인증’의 구조는 『종경록』의 전형적인
다. 고성화상의 노래가 『종경록』 안에서 세 번 인용되는 것을 논의 방식을 드러내고 있다. 우선 물음의 요지는 인간의 행위
보면, 그것이 연수선사가 드러내려던 바와 상당히 일치하는 인 업 (業), 그리고 인간의 행위가 남긴 흔적 혹은 힘을 뜻하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단적으로 말하면, 그 공통점은 바로 종자(種子)는 무수한 윤회의 시간을 거쳐 형성된 것인데, 『종
‘마음’에 있다. 『종경록』 100권은 분량상 결코 적지 않지만, 내 경록』에서는 어째서 마음만 깨달으면 단박에 그러한 것들을
용적으로 보면 그것은 마치 북극성을 중심으로 많은 별들이 끊고 성불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지를 묻는 데 있다. 이 의문
돌아가듯, 모두 ‘마음’을 중심에 두고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을 풀어주기 위해 대답에서는 마음과 경계, 인 (人)과 법(法) 등
있다. 그러므로 연수선사는 매우 수고롭게도 온갖 경론들에 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듯 그렇게 견고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
서 마음과 관련된 문구들을 두루 뽑아 『종경록』에서 보여주 니라, 여러 가지 인 (因)과 연(緣)을 따라 일어났다가 소멸하는
고 있는 것이다. 『명추회요』 141쪽의 문답 역시도 초점은 ‘마 공(空)한 것임을 분명히 자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자
음’에 있다. 각이 없으면, 마치 모래로 밥을 지을 경우 아무리 오랜 시간
● 고경 2017. 12. 44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