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7 - 고경 - 2017년 12월호 Vol.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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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주인공의 삶
 한편으론 내공의 시간이 81년쯤은 되어야 죽음이 반가워

 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눈멀지 못해서 이익을 찾아 헐떡이고
 귀멀지 못해서 못내 질투를 감내해야 하는 게 청춘이다. 그러  가까운 나라 이야기,
 므로 늙어서 낡고 문드러진 몸만이 죽음과 온전히 섞이기 쉽  지옥의 생활방식
 다. 감인대 (堪忍待). 견디고 참고 기다리면서 세월을 묵묵히 따
 라가다 보면, 세월이 수고했다며 물 한 모금 내어줄 날이 있을
          글 : 이인혜
 것이다. 살아남는다는 건 단순히 세속의 전리 (戰利)을 넘어 영
 성 (靈性)의 영역이다.
 다시 소중한 <고경>에 집필을 계속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

 다. 『종용록』이든 『벽암록』이든 옛 중국 스님들의 말과 삶을
 소재로 한 고전이다. 예전부터 한국판 『벽암록』을 쓰고 싶다
 는 바람을 가졌다. 근현대 한국 선사들의 수행 일화들은 고대   『아함경』부터 『열반경』까지 거의 모든 경에 지옥 이야기가
 중국 선사들의 그것보다 몇 겹은 쉽고 정답게 다가올 것이란   나온다. 약간씩 표현의 차이는 있으나 내용은 거의 같다. 그
 믿음이다. 궁극적으로는 이른바 ‘선 (禪)적인 것’에 대한 탐구를   중에서도 『장아함경』에 전하는 지옥 이야기는 자세하고 생생

 지속하는 시간이 되길 빈다. 그 안에서나마 탐심과 악심을 쉴   하다. 큰 지옥이 여덟 개가 있고 거기에 각각 딸린 지옥이 열
 수 있을 테니까. 내가 가진 말의 맛과 내가 처한 삶의 맛을 숙  여섯씩이나 되고, 별도의 지옥이 또 있으니 그 이름만 열거
 성하고 싶다. 부디 소화를 잘 시켜서 다가올 죽음 앞에서 ‘역  해도 원고가 꽉 찰 지경이다. ‘되살아나는 지옥’부터 ‘맷돌 지

 류성 식도염’ 따위로부터는 면탈해야겠다. 두려워한다거나 아  옥’, ‘칼 지옥’, ‘끓는 가마 지옥’, ‘아아 지옥’, ‘어찌하랴 지옥’까
 쉬워한다거나.   지, 이름만 들어도 느낌이 온다. 알바 때문에 할 수 없이 읽었
          는데, 읽는 동안 지옥 중생들이 겪는 참상이 떠올라 힘들었다.
          혼자 보기 아까워 그 참상을 함께 하고자 한다. 지옥 중생의
 장웅연   _ 집필노동자. 1975년생.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2002년부터 <불교신
 문>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다. 본명은 ‘장영섭’. 글 써서 먹고 산다. 포교도 한다. 그간 『불교  생활방식은, 아니, 생활방식이랄 것도 없다. 그저 틈 없이 갖가
 에 관한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물음49(2017년 상반기 세종도서 교양부문)』, 『길 위의 절(2009년   지로 달달 볶이는 게 그들의 생활이다. 첫 번째 지옥으로 들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불행하라 오로지 달마처럼』,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선문
 답』 등 9권의 책을 냈다. 최근작으로 『불교는 왜 그래?』가 있다.  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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