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 - 고경 - 2018년 1월호 Vol.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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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묘문(妙門)에 들어갔다. 이후 643년 우두산(牛頭山) 유서사 명성을 드날렸다. 다만 이들 우두종의 흐름은 송(宋) 이후로는
(幽棲寺)의 북암(北巖) 아래 따로 선실(禪室)을 짓고 선관을 닦았 많이 쇠약해졌다.
는데, 사방에서 100여 명 이상의 수행자들이 모여들었다. 우두종의 선사상에 대해서는 종밀이 쓴 『중화전심지선문사
『전등록』에 따르면, 멀리 쌍봉산에 주석하던 선종의 4조 도 자승습도(中華傳心地禪門師資承襲圖)』에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신 (道信) 선사께서 우두산에 기인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있다.
법융 선사를 찾아가 선종의 돈법 (頓法)을 전수했다고 한다. 그
래서 법융 선사의 선법은 도신 선사의 제자였던 5조 홍인의 동 우두종의 가르침은 다음과 같다. 모든 법이 다 꿈과 같아
산종(東山宗)과 대비되어 우두종(牛頭宗)으로 칭해지게 되었다. 서 본래 일삼을 것이 없으며, 마음과 경계가 본래 고요하여
이후 우두종에 속하는 선사들의 활동이 매우 활발해져서 마 지금 비로소 공해진 것이 아니다. 미혹한 이들은 이를 실재
조 스님의 시대에는 당시 선종의 주요한 흐름 가운데 하나로 한다고 여겨서 귀함과 천함, 화려함과 보잘것없음 등의 일이
자리잡게 되었다. 『명추회요』에 나온 불굴유칙 선사 역시 우두 있다고 본다. … 설령 열반보다 더한 법이 있다고 해도 또한
종의 제6조인 우두혜충(牛頭慧忠)의 제자로서, 당시에 쟁쟁한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을 따름이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우두종의 선법은 철저히 공(空)에 기반
해 있다. 5조 홍인 선사의 문하에서 “마음을 관하라”는 관심
(觀心)이나 “마음을 지켜라”는 수심(守心)을 강조하는 것에 비
해, 우두종에서는 “본다는 마음마저도 끊어라”는 절관(絶觀)을
내세운다. 이들은 주변 사물의 공한 상태뿐 아니라 그것을 바
라보는 주체의 공함 역시도 철저히 체득하려 했던 것으로 보
인다. 이러한 우두종의 선법을 담은 책으로 『절관론(絶觀論)』이
전해지는데, 『명추회요』의 근간이 되는 『종경록』에 이 『절관
론』이 많이 인용되어 있어서 오늘날 우두종을 연구하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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