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0 - 고경 - 2018년 1월호 Vol.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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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을 얻지 못합니까?                                                                    입각해서 이해해야 제대로 파악된다.
                【답함】 중생은 색(色)과 마음이 청정하다는 사실을 알지                                                대승의 공은 다양한 인 (因)과 연(緣)이 조합되어 하나의 사태
             못하고 망상으로 전도되었기 때문에 해탈을 얻지 못한다.                                                  가 발생한다는 뜻의 연기 (緣起)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즉 나의

             만약 인 (人)과 법(法)이 항상 공적한 줄 알면 그 속에는 진실                                            몸과 마음 역시 다양한 인과 연의 조합으로 성립된 것이므로,

             로 속박도 해탈도 없다.                                                                   이들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살펴보면, 그 속에는 우주
                                                                                             의 이법 (理法)인 연기의 원리가 관철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인용문에서 언급한 『경』의 출처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는다.                                                렇게 보면, 나의 몸과 마음을 버리고 따로 연기의 이치와 공의

           다만 이는 『화엄경』에서 설한 “마음과 부처, 그리고 중생, 이                                               도리를 찾을 것이 아니라 바로 그곳에서 우주의 진실을 마주

           셋은 차별이 없다.[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는 내용과 상통한다.                                              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이러한 공의 도리는 누군가 억지로 만들
           중국의 많은 불교도들이 바로 이 『화엄경』의 경문을 보면서 부                                                어낸 것이 아니라 항상 본래 그러한 것이다. 따라서 이런 자각
           처님과 같이 깨닫는 길의 통로를 ‘마음’으로 파악하였다. 어쨌                                                속에서는 누구도 우리를 속박할 수 없게 되고, 속박이 없으므

           든 인용문에 나오는 경문에 따르면, 중생 역시 부처님처럼 속                                                 로 그로부터 풀려나는 것 [解脫]도 없다는 것이 바로 불굴 선사
           박도 없고 해탈도 없다고 했는데, 어째서 보통 사람들은 윤회                                                 께서 답변하신 요지가 아닌가 생각된다.

           의 속박에 빠져 해탈을 얻지 못하는가 하는 점을 충분히 궁금
           하게 여길 수 있다.

             이에 대해 불굴 선사는, 중생들이 자신의 몸과 마음이 본래
           청정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해탈을 얻지 못한다고

           답하였다. 그런데 “자신의 몸과 마음이 본래 청정하다”는 말씀
           은 초기불교의 맥락에서는 잘 이해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초

           기의 『아함경』 등을 보면 몸과 마음이 무상(無常)하고 무아(無
                                                                                             박인석
           我)이므로, 이를 버리고 떠날 것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러므                                                —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영명연수 『종경록』의 일심사상 연구’로 박
                                                                                             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의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불교전서>를 우리말로
           로 불굴 선사의 답변은 대승불교에서 주창한 ‘공(空)’의 관점에                                               번역하는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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