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2 - 고경 - 2018년 2월호 Vol.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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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그물, 권력의 그물, 생계의 그물, 음녀의 그물, 송사의 학생에 지나지 않는다. 선생만, ‘선생님’이다.
그물… 그물의 형식은 억압이기도 하고 유혹이기도 하고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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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도 하다. 크고 작은 그물들의 경쟁과 결탁 안에서, 나 역시
술을 좋아하거나 여자를 좋아하면 개인만 망한다. 도박을 좋아하면 집안이
나름대로 그물을 드리우고 무엇이든 걸리길 기다린다. 세상은
망하는 것과 다른 점이다. 선(禪)을 좋아하면 술이든 여자든 도박이든 죄다
끊임없이 문제를 던지고 문제가 원하는 답변을 준비해야만, 그
망해버리는 것과도 다르다.
물 속에서나마 살아남을 수 있다. 물론 그물 안에 쳐진 그물일
뿐이다. 그리고 그들의 그물이 나의 그물을 먹어치워야만, 내
그물은 안전하다.
#3. 성철의 아궁이
내가 그물을 치는 자세는 대체로 넙죽 엎드린 채 손만 벌리
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뭔가 바라는 게 있으니까 그물 안으로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고 아쉬워들 한
자청해 들어간 것이고, 그들처럼 되기를 바라니까 그들을 흉내
다. 오죽하면 비슷한 제목의 베스트셀러가 있다. 알고 보면, 그
내서 투망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물의 바깥에서 살고 싶다면,
때 몰랐으니까 지금 아는 것이다. 몰라서 당했으니까, 몰라서
물고기의 인생 따위는 선뜻 포기할 수 있는 마음이어야 한다.
죽을 만큼 힘들었으니까, 이제는 죽을힘을 다해 기억하는 것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것들은, 그물이 잘 안 먹는다.
다. 지혜는 언제나 뒤늦게 오고, 깨달음은 자살 시도를 해본 자
무엇보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살고 싶다면, 그물을
들에게만 온다. 그래서 인생은 일견 살아볼 만하다. 오래 살아
찢어야 한다. 누가 깨달음에 대해 물을 때, 선사들이 동문서답
야 하나라도 더 안다. 깊은 고통은 목숨을 하나 더 준다. 만약
을 하거나 아예 묻는 입을 비틀어버리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때 알아버렸더라면, 이렇게 옹알거리지도 못했으리라.
‘정답’이란 걸 부숴버려야만 정답에 갇히지 않기 때문이다. 나
만의 길을 닦아야 남들이 닦아놓은 길에서 멀찌감치 도망칠
해인사 방장(方丈)이었던 퇴옹성철(退翁性徹, 1912~1993)이
수 있다. ‘1+1’이 ‘2’가 아닌 ‘젓가락’인 삶은 혼자서도 장단 두
어느 겨울밤 야경 (夜警)을 잘 하는지 보려고 암행을 나섰다.
들기며 잘 논다. 이른바 ‘신의 한 수’도 못 당해내는 것이 바둑
= 우리나라 전체 문화재의 65%는 불교문화재다.
판을 뒤엎어버리는 일이다. 주야장천 100점을 맞은들 학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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