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 - 고경 - 2018년 3월호 Vol.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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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조 승찬(三祖僧璨) 스님은 북제(北齊)의 천평(天平) 2년(556)
에 소림사에서 법을 얻은 후 환공산(晥公山)에 은거하며 죽을
때까지 이름을 밝히지 않았고, 혜안(慧安) 스님은 수문제(隋文
帝)가 개황(開皇) 7년(587)에 천하의 모든 사제(私製) 도첩(度牒)
을 지닌 승려를 조사할 때, 내 본디 이름이 없다 하고 마침내
숭산에 은둔하였다. 두 스님은 이름과 누를 싫어하며 그렇게
도학에 한결같이 정진하였으니 나는 참으로 그분들을 흠모한
다.” <혜홍각범(慧洪覺範), 『임간록(林間錄)』>
『정종기(正宗記)』에서 삼조(三祖) 스님을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존자께서 처음엔 비록 그의 성씨와 집안과 고향 등을 말하
지 않았지만 그 후 세상에 나와 30여 년 동안 어찌 입을 닫고
조금치도 자기 신분을 말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이 점이 의
심스러웠다.
그런데 내 비문을 살펴보니, ‘대사는 일찍이 사도 도신 (四祖道
信, 580~651) 스님에게, <누가 묻더라도 나에게 법을 얻었다 말
하지 말라!>고 하였다’ 하니 이는 존자 스스로가 세상 인연을
미련 없이 끊은 말이다. 도인 [至人]은 사물의 자취가 대도(大道)
에 누(累)가 된다 생각하여, 마침내는 자신의 마음까지도 잊어
버리는 것이다. 이제 바른 법의 종지마저도 잊고자 하는데 하
물며 성씨며 고향 따위의 속세 일을 생각하였겠는가?”
나는 『정종기』에서 이 부분을 읽다가 명교 스님의 공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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