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 - 고경 - 2018년 3월호 Vol.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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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꽃이여! 그대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면 나는 신이 무엇

                                                                                             이며 인간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노래했다. 양지
           사물에 의탁하여                                                                          바른 담장 밑에서 외롭게 피어난 한 떨기 들꽃의 실체가 무엇


           드러나는 진리[法]                                                                        인지 알 수 있다면 인간은 물론이고 신 (神)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서양에 선 (禪)을 처음 알린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는 테
           글│서재영(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                                                                니슨의 이 시와 함께 17세기 일본 시인 바쇼(芭蕉)의 하이쿠 한

                                                                                             수를 대조적으로 설명한다. “자세히 보니 냉이 꽃이 피어 있네.
                                                                                             울타리 밑에.”라는 짧은 내용이다. 후미진 곳에 피어난 한 떨기

           ○●○                                                                               들꽃을 보고 썼지만 꽃을 바라보는 두 시인의 관점은 매우 대
                                                                                             조적이다. 스즈키는 테니슨의 시가 소유의 양식이라면 바쇼의

             한 떨기 들꽃의 실체를 알 수 있다면                                                            하이쿠는 존재의 양식이라고 해석했다.
             산을 오르다 보면 갈라진 바위틈에 뿌리내린 키 작은 소나                                                   프롬(E. Fromm) 역시 이 두 시를 소개하면서 두 사람은 존재

           무를 발견하곤 한다. 그때마다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                                                  에 대한 본질적 관점의 차이가 있다고 보았다. 테니슨의 관점
           다. 비단 산이 아니라도 후미진 골목의 돌담이나 시멘트 담장                                                 은 꽃을 소유하려는 욕구를 드러낸 것이며, 그 결과 한 생명이

           에서도 그런 풍경은 있다. 갈라진 작은 틈바구니에 흙먼지가                                                  파괴되었다고 지적한다. 반면 바쇼는 단지 꽃이 피어 있음을
           쌓이고 바람을 타고 날아온 씨앗이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꽃                                                  느낄 뿐 소유하려 하지 않았다.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

           을 피우는 모습은 우리들을 숙연하게 만든다.                                                          기 때문에 꽃의 생명도 파괴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척박한 환경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생명에 대한                                                   이와 같은 해석은 동서양의 사유양식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

           경외심은 19세기 영국 시인 테니슨(Tennyson)도 예외가 아니었                                            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또 다른 맥락에서 보면 테니슨의
           다. 그도 돌담 틈바구니에서 피어난 한 떨기 이름 모를 꽃을 발                                               관점을 소유의 방식이라며 그 의미를 깎아내릴 일만은 아니다.

           견하고 강렬한 인상을 받는다. 시인은 꽃을 뿌리째 뽑아들고                                                  테니슨은 한 떨기 야생화의 존재를 알 수 있다면 인간과 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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