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3 - 고경 - 2018년 3월호 Vol.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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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인 연기법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드러날까? 연기는   라 우주의 원리인 법성 (法性)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

 모든 존재를 관통하는 존재의 실상이자 이법 (理法)이지만 어떤   철 스님은 “사사(事事), 즉 티끌 하나하나, 구슬 하나하나, 흙덩
 형상도 띠지 않고 있다. 보이지도 않고,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  이 하나하나, 똥 덩이 하나하나, 어느 것 할 것 없이 그 하나하

 고, 만져지지도 않고, 여섯 가지 감각의 저 편에 있다.  나에 전체가 완전히 구비되어 사사무애가 완전히 성립된다.”고
 그렇다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테니슨은 담벼락 아래 피어   했다. 이처럼 법은 한 송이 꽃을 통해 드러나고, 무수한 관계적

 있는 한 떨기 들꽃을 알면 존재의 근원인 신을 알 수 있다고   맥락 속에서 존재한다. 따라서 법을 보거나 법신을 보고자 한
 했다. 마찬가지로 화엄에서도 우주를 움직이는 진리는 우리들  다면 어떤 초월적 형상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눈앞에 펼쳐져

 이 보고 있는 “무수한 사물에 의탁해 드러나 있다.”고 한다. 연  있는 사물을 보면 된다. 그 사물들이 맺고 있는 관계를 보면 되
 기라는 법 (法) 자체는 형태도 없고, 색깔도 없고, 촉감도 없다.   고, 그 사물들이 작용하는 역용(力用)을 보면 되고, 그 사물들

 법은 아무런 형태도 없지만 우리들의 눈앞에 드러나 있는 무  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과정을 보면 된다.
 수한 사물에 의탁해 자신을 드러낸다.  그래서 화엄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을 설명하는 대신

 법은 ‘자아’라는 정해진 형태를 고집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우리들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사물의 실상을 보라고 하고, 그
 형태가 될 수 있고, 모든 존재로 들어가 자신을 드러낼 수 있  속에서 진리를 깨달으라고 한다. 이런 안목을 가질 때 모든 생

 다. 이처럼 고정된 실체가 없는 이법이 개별적 사물의 모습을   명을 부처님처럼 존귀하게 보게 되고, 모든 존재를 법신으로
 빌려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탁사현법 (託事顯法)’이라고 한다. 하  존중할 수 있다. 이처럼 아무리 작고 하찮은 존재일지라도 법

 나의 “사물에 의탁하여 법 (法)이 드러난다.”는 뜻이다. 법은 모  성이 담겨 있기 때문에 천태는 ‘일색일향무비중도(一色一香無非
 습이 없지만 무수한 사물에 의탁하여 드러나고, 무한한 소리  中道)’라고 했다. 하나의 빛으로 드러나는 미세한 존재들, 바람

 로 울림을 주며, 무한한 향기로 세상을 풍요롭게 하고, 감미로  에 떠도는 미세한 향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다 중도(中道)
 운 맛으로 생명을 양육하고, 다양한 감촉으로 기쁨을 주며 도  라는 존재의 본성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처에서 나타나 있다.     우주는 연기법이라는 원리에 의해 움직이고 존재하지만 연
 이런 이유 때문에 화엄에서는 모든 사물을 그 자체로 법성  기법은 형태가 없기 때문에 은밀히 숨겨진 비밀과 같다. 하지만

 (法性)이나 법신(法身)이라고 본다. 사물은 단지 사물이 아니  그 비밀은 무수한 사물들의 모습으로 모두의 눈앞에 펼쳐져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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