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 - 고경 - 2018년 4월호 Vol.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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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지(十地)로 그들을 다스려도                                                                노승은 지팡이를 휘두르며 그곳을 떠나갔다. 그 처녀는 주씨

             깨어날 길이 없구나.                                                                     (周氏) 집안의 막내딸이었는데 집에 돌아오자 아기를 잉태하니,
                                                                                             그의 부모는 몹시 화가 나서  쫓아내 버렸다. 그 처녀는 갈 곳

             스님은 미소 지으며 말씀하셨네                                                                이 없어 낮에는 동네에서 길쌈으로 품팔이를 하고 밤에는 행
             독한 약을 써서 무엇하랴                                                                   각승이 묵다 가는 객사[衆館] 아래에서 잠을 자며 지내다가 사

             억지 이름만 짓지 않는다면                                                                  내아이를 낳았다. 그리고는 불길하다 하여 물속에 버렸으나, 이
             자연히 병은 없어지리라.                                                                   튿날 보니 물길을 거슬러 올라왔는데 몸이 매우 선명하기에 깜

                                        <혜홍각범(慧洪覺範), 『임간록(林間錄)』>                             짝 놀라 건져 올렸다. 자라면서 어머니를 따라 구걸을 하니 그
                                                                                             고을 사람들이 ‘성 없는 아이 [無姓兒]’라 불렀다. 사조스님이 황

             옛말에 의하면, 사조도신(四祖道信) 스님이 파두산(破頭山)에                                               매산(黃梅山)으로 가는 길에 이 아이를 보고 장난삼아 물었다.
           있을 무렵 그 산중에 이름 없는 노승 한 분이 있었는데 오로                                                   “너의 성이 무엇이냐?”

           지 소나무만을 심었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소나무 심는 도인                                                    “성이 있기는 합니다만 보통 성씨가 아닙니다.”
           [栽松道者]’이라 하였다. 어느 날 그는 사조스님에게 “설법을 좀                                                “무슨 성이냐?”

           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더니, “그대는 이미 늙었으니, 도를                                                 “불성 (佛性)입니다.”
           듣는다 한들 널리 펼 수 있겠는가. 혹시 그대가 다시 태어나                                                   “성이 없느냐?”

           찾아온다 하여도 늦었다고 생각하리라.” 하였다.                                                          “성씨가 ‘공(空)’인 까닭에 없습니다.”
             노승은 마침내 그곳을 떠나 시냇가에서 빨래하는 한 처녀를                                                   이에 사조스님은 그를 출가시키도록 어머니를 설득하니, 그

           보고서 정중하게 물었다.                                                                     때 나이 7세였다.
             “하룻밤 묵어갈 수가 있겠소?”                                                                 당시의 객사[衆館]는 오늘날 절이 되어 불모사(佛母寺)라 하였

             “저의 집에 어른이 계시니 가서 부탁해 보시오.”                                                     으며, 주씨 집안은 더욱 성하게 되었고, 파두산 저 멀리 바라보
             “그대가 응낙한다면 가보겠소.”                                                               이는 곳에 ‘소나무 심는 도인 [栽松道者]’의 육신이 아직도 남아

             그러자 처녀는 고개를 끄덕여 그러라는 의사를 표시하였고,                                                 있으며, 황매산, 동선사(東禪寺)에는 불모총(佛母塚)이 있는데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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