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9 - 고경 - 2018년 4월호 Vol.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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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밭’이나 ‘세월의 강’이라는 말에는 그런 의미가 내포되어 있  역시 ‘시각의 사이’를 나타내는 말들이다. 세월은 해와 달이라

 다. 이는 시간이 존재를 초월해 있는 실체라고 인식하는 것을   는 뜻이므로 해와 달이 뜨고 지는 사이를 말하며, 광음 역시
 의미한다. 그렇다면 정말 시간이라는 강이 있고, 존재들은 시  빛과 그림자 즉 낮과 밤이라는 사이를 의미한다.

 간의 강물을 따라 떠내려가는 수동적인 것일까? 결론부터 말  결국 시간은 낮과 밤의 사이, 봄과 여름의 사이와 같이 행성
 하면 존재를 초월해 있는 절대불변의 시간이란 없다. 독립적   의 물리적 변화가 만들어 낸 것이다. 시간이 흘러서 낮과 밤이

 실체로서 시간이라는 질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들의 변화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낮과 밤이 교차하여 시간이 흐르는 것이
 가 곧 시간이기 때문이다. 화엄사상을 집대성한 법장도 시간은   다. 따라서 존재는 시간의 토대인 소의가 되고, 시간은 존재에

 존재에 의지해 있는 능의라고 했다.  기대어 있는 능의가 된다는 화엄의 시간관은 물리학적 관점과
 시간은 만질 수도 없고, 어떤 실체적 대상도 없다. 시간을 측  일치한다.

 정하는 것은 존재의 물리적 변화를 통해서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시간은 철학자의 영역이라기보다 물리학자의 영역이 되

 어 왔다. 고전물리학에서 시간은 3차원 공간에서 일어나는 물
 리적 변화를 설명하는 매개변수였다. 굳이 물리학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고대로부터 낮과 밤이나 계절의 변화와 같이
 천체의 물리적 변화를 통해서 시간을 인지해 왔다. 이런 전통

 은 근대까지 이어져 1960년 국제도량형총회는 지구의 공전을
 기초로 시간의 단위인 역표초(曆表秒)를 산출해 냈다.

 이렇게 보면 ‘Time’이라는 말을 나타내는 ‘시간(時間)’이라는
 표현은 매우 절묘하다. 시간은 특정한 한 점이 아니라 ‘시각의

 사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한 시’에서 ‘두 시’로 바늘이 움직이
 는 것과 같은 물리적 변화가 ‘시각의 사이’로서 시간인 셈이다.

 시간을 나타내는 또 다른 표현인 ‘세월 (歲月)’이나 ‘광음(光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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