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 - 고경 - 2018년 4월호 Vol.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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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이라고 했다. 아득히 긴 시간이                                                현재 핀 꽃은 돌아올 가을이면 열매가 되므로 미래의 열매는

           곧 찰나의 한 생각이고, 찰나의 한 생각이 곧 아득히 긴 시간                                                현재의 꽃에 의지해 있다. 이렇게 시간도 존재의 공간적 관계성
           이라는 것이다. 법장과 의상 모두 시간은 일념에 의해 억겁의                                                 에 따라 과거가 곧 현재가 되고, 현재가 곧 미래가 되는 상입 (相

           길이로 확장되기도 하고, 찰나의 순간으로 수렴되기도 한다고                                                  入)의 관계가 성립된다. 과거·현재·미래라는 삼세가 서로의 경
           보았다. 이처럼 법장의 설명에 따르면 시간은 존재에 의존해 있                                                계를 허물고 상호 융합하는 것이다.

           다는 것, 시간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지만 아홉 단계의 층위로                                                   둘째는 시간의 개별성이다. 법장은 시간이 열 가지 층위로
           구별된다는 것, 시간의 기준은 일심이라는 관찰자의 마음이라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의상은 그런 열 가지 층위의 시간이 ‘호

           는 것이다.                                                                            상즉(互相卽)’, 상호 전환이 일어난다고 했다. 그렇다면 시간은
             그런데 시간이 존재에 의존해 있다면 존재의 특성은 시간                                                  경계도 없이 뒤섞여 과거도 없고, 현재도 없고, 미래도 없는 것

           에도 투영될 것이다. 모든 존재는 상호 연결되어 있는 상입상                                                 일까? 근원적 맥락에서 따지면 과거·현재·미래는 상즉의 관계
           즉의 특성을 띠고 있다는 것이 십현문의 핵심이다. 만약 시간                                                 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존재에 의존해 있다면 시간도 그와 같은 존재의 특성을 반                                                 현재는 현재대로 있고, 과거는 과거대로 있고, 미래는 또 미래
           영해야 한다. 이런 특성에 대한 설명은 법장의 십현문보다 의상                                                대로 있다. 이런 시간의 원리에 대해 의상은 ‘잉불잡난격별성 (仍

           대사의 『법성게 (法性偈)』에 보다 더 정교하게 나타나 있다.                                                不雜亂隔別成)’이라고 했다. 시간은 과거·현재·미래가 중층적으
             첫째, 시간의 통합성이다. 의상은 시간의 통합성에 대해 ‘구                                               로 혼재되고, 압축되기도 한다. 하지만 과거는 과거대로, 현재

           세십세호상즉(九世十世互相卽)’이라고 했다. 과거·현재·미래라는                                                는 현재대로, 미래는 미래대로 각각의 경계가 독립적으로 존재
           각각의 시간이 상호 전환되는 ‘상즉(相卽)’의 관계에 있다는 것                                               한다는 것이다.

           이다. 시간이 존재와 분리된 독립적인 실체가 아니라 존재에 의
           존해 있다면 과거와 현재가 서로 전환되는 것이 이상하지 않

           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고 피어난 봄꽃은 분명 현재지만 그 꽃                                                서재영
                                                                                             —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선의 생태철학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은 지난 가을에 떨어진 씨앗에 의존해 있다. 현재 핀 꽃 속에                                                동국대 연구교수, 조계종 불학연구소 선임연구원, 불교신문 논설위원 등을 거쳐 현재 불광연구
                                                                                             원 책임연구원으로 있다. 저서로 『선의 생태철학』 등이 있으며, 포교 사이트 www.buruna.org
           과거가 내포되어 있으므로 과거와 현재는 융합해 있다. 나아가                                                 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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