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 - 고경 - 2018년 5월호 Vol.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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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말하였다.                                                                      이르러서 의발을 들려 했으나 들지 못하고 비로소 힘으로 빼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                                                 앗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머리를 숙이고 약
           라 자기 마음이 움직일 뿐입니다.”                                                               을 내려 주기를 빌었다. 대감께서 “착함도 생각하지 말고 악함

             인종 법사는 이 말을 듣고 마침내 스님에게 가사를 걸쳐 주                                                도 생각하지 말라. 이런 때 상좌의 면목이 어디에 있느냐?”는
           고 머리를 깎아 주었다.                                                                     질문을 던지자 그는 곧바로 귀착점을 알았다.

             그 후 소주(韶州) 자사 위거(韋據)가 스님을 대범사(大梵寺)에                                               시절인연이 아직 이르지 않아 대감 스님은 다시 사회 (四會)                  2)
                                                                                                                                           3)
           맞이하여 법륜을 굴려 달라 청하고 무상심지계 (無上心地戒)를                                                 의 사냥꾼 속에 오랫동안 은둔한 뒤에야 번우(番禺) 로 나와
           받았으며, 문인들은 스님의 법어를 기록하여 『단경 (壇經)』이라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제목을 붙였다. <희수소담(希叟紹曇), 『오가정종찬(五家正宗贊)』>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는 말을 토로하였다. 이 말을 들은 인

                                                                                             종(印宗, 627~713) 법사는 스승으로 모시는 예의를 갖추고 머리
             조계대감(曹溪大鑑, 638~713) 스님이 출가하기 전에 신주(新州)                                          를 깎아 주고 구족계단(具足戒壇)에 오르게 하였다. 그러자 즉

           의 땔감장수였다. 보잘것없이 수십 년을 지내다가 어느 날 아                                                 시 큰 법요(法要)를 여시고 2천의 대중을 격발시켜 명성이 대
           침에 나그네가 경전 외우는 소리를 듣고 그 본원 (本願)을 세우                                               궐에까지 알려졌다. 천자는 가까운 신하에게 명령하여 가사와

           고는 어머니를 버리고 고향을 떠나 멀리 황매산의 스님 (오조홍                                                발우를 하사하였으나 스님은 끝내 받지 않았다. 용상(龍象) 대
           인, 602~675)을 찾아갔다. 처음 뵙고 몇 마디 대화 사이에 기연                                           덕 수십 사람을 제도하였는데 모두가 대종사였으니, 어찌 그리

           이 투합하여 자취를 숨기고 8개월 동안 방아를 찧었다.                                                    도 위대하신가! <원오극근(圓悟克勤), 『원오심요(圓悟心要)』>
             이윽고 신수(神秀, 605~706) 대사와 함께 게송을 바치고서야

           비로소 칼끝을 드러냈더니, 황매산의 스님은 드디어 가사와 바
           리때를 그에게 전수하였다. 이때 여러 대중들이 쫓아가 다투어                                                    6조 혜능(慧能)에게 전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혜능을 쫓아갔다가 대유령(大庾嶺)
                                                                                                에서 혜능의 설법에 깨달았다. 혜능과 헤어져 여산(廬山)에 머물다가 원주(袁州)
                                           1)
           빼앗으려 하였다. 몽산(夢山, 697~780) 이 먼저 대유령(大庾嶺)에                                             몽산(蒙山)에 머물렀다. 원래의 법호는 혜명(慧明)이었으나 혜능의 ‘혜(慧)’ 자를
                                                                                                피하여 도명(道明)이라고 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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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몽산(夢山, 697~780) : 진(陳) 선제(宣帝)의 자손으로서 장군 또는 4품장군이라고
              한다. 어려서 출가하여 5조 홍인(弘忍)에게 참학하고 있었다. 보리달마의 가사가                                   3)  광동성 (廣東省) 광주시(廣州市) 번우구(番禺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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