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4 - 고경 - 2018년 6월호 Vol.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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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위가 만들어 내는 모든 존재는 꿈이요 환상이요 거품이요 그림자 같 이다. 하지만 조건과 반응 사이의 기본적인 메카니즘은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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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것이다. ” 거칠게 말한다면 연기론(緣起論) 또한 같은 범주 안에 들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먼 훗날, 과학기술이 훨씬 더 발달했을 때, 20년의 경험을 응
그러고 보면 사이퍼는 불교의 존재론을 몸으로 터득한 사람이다. 그는 축하여 한 번에 입력시킬 수 있다면, 그리하여 한국인에게 장사 사람들의
매트릭스가 지배하는 세계의 실상을 보았다. 거품과 다를 게 없는 환상, 20년 경험을 입력한다면, 그러면 향신료 강한 장사의 민물가재 요리도 맛
실상을 감춘 그림자. 진실을 깨달은 대가로 그는 무미건조(無味乾燥)한 삶 있게 먹을 것이다. 원효 스님에게도 아마존 원주민의 경험을 입력한다면,
을 산다. 하릴없이 시간이나 보낸다는 말이 아니라, 말 그대로 맛없고 메 스님은 아마도 우연한 행복감에 흐뭇한 미소를 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른 일상을 보낸다. 꿈도 환상도 없는 삶이 그렇지 않겠는가. 이 영화에서 원효라면 더 묻고 따졌어야만 했다. 그 자리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말 게
진실을 본 사람들은 허름한 넝마를 걸치고 멀건 죽으로 기본적인 욕구를 아니었다. 도대체 누가 나로 하여금 토하게 만들었는지, 무엇이 내 마음을
채우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출가자처럼 머리까지 깎은 모습이고 보면, 어 움직이는 것인지, 내게 구토로 반응하게 만든 조건에는 어떤 것들이 어떻
쩌면 깨달음의 세계를 영화는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게 설정되어 있는지, 묻고 따졌어야 했던 것이다.
사이퍼는 그런 무미건조가 싫었다. 하여 가난하고 맛없는 진실보다는,
부유하고 화려한 거짓을 택한다. 그는 동지들을 배반하는 대가로 다시 캡 여행 코드, 상징과 은유
슐 속에 넣어져 꿈속에서 살고자 했다. 그 속에서 그는 아리따운 여자들
에 둘러싸여 맛있는 스테이크를 자르는 꿈을 꿀 것이다. 영화는 상징(symbol) 체계이다. 영화 속 장면이나 소품은 메시지를 담고
이런 내용이 그저 SF영화이기에 가능한 걸까? 스테이크가 입 안에 들 있는 은유(隱喩, metaphor)이며 상징이다. 예컨대 <매트릭스>에서 요원들이
어오면 두뇌가 반응한다. 두뇌는 신호를 전달받고 전달한다. 만약 두뇌의 네오의 뱃속에 집어넣은 벌레는 인간의 의식 속에 이식된 관념을 은유한
신호전달체계에 조작이 가해진다면, 두뇌는 조작된 대로 반응할 것이다. 다. 즉 어떤 관념은 선천적이거나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후천
개에게 고기를 줄 때마다 불을 켜는 일을 반복하면, 개는 고기를 주지 적으로 누군가에 의해 이식되는 것임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않고 불만 켜도 침을 흘린다. 파블로프의 조건반사 실험이다. 아무려면 만 이식하는가? 영화처럼 특정한 임무를 맡은 요원들이? 아니면 전능한 신
물의 영장인 인간을 두고 개에게 행했던 실험을 운운할까. 인간은 훨씬 더 이? 아니면 정말로 자연스럽게? 만약 누군가에 의해 특정한 관념이나 생
복잡하고 정밀하다. 따라서 이런 비유 자체가 인간에겐 매우 모욕적인 것 각이 우리들의 마음속에 심어질 수 있다면, 죽는 그날까지 행복한 꿈을
꾸다가 죽게 해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죽어서도 저 높은 하늘나
라에 올라가 영원한 행복을 누리며 사는 환상을 심어달라고 할 수도 있을
1) 『금강경(金剛經) 사구게(四句偈)』,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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