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3 - 고경 - 2018년 6월호 Vol.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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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주인공의 삶
행하는 스님들은 도적의 쉬운 목표물이 되어 옷과 발우를 빼앗기고 폭행
수고 많으셨습니다, 부처님 을 당하고 먼 지역에 종으로 팔아넘겨지기도 했다. 이런 일이 생기다 보니
안전한 거처가 절실해졌는데, 그것은 대부분 부처님의 힘으로 마련되었다.
이인혜 부처님은 인물로 보나 언변으로 보나 품행으로 보나, 무엇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부처님에게 반했고 자신들의 집과 동산을 내놓기 시작
경을 펼치면 ‘여시아문’ 다음에, 부처님께서 어느 때 어디서 1250명의 했다. 전법을 하러 돌아다니는 곳마다 신도들이 늘어나고 그에 따라 거처
비구와 함께 계셨다는 말이 나온다. 그 옛날에 1250명이면 많은 숫자다. 도 늘어났다. 그러나 비바람과 해충을 막았다 해도 아직 안심할 단계가 아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어떻게 먹고 살았을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 경보다는 니었다. 밥과 생필품을 얻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나 어려웠는지
율장에 자세히 전한다. 『오분률』을 읽어보면, 부처님은 정신적인 스승일 뿐 는 『오분률』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만 아니라 제자들의 안전과 생계를 책임지는 교단의 운영자이기도 했다.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밥과 옷을 빌 때 이렇게 하라고 일러주셨다. “빌
율은, 그자체로 가르침이자 수행방편이지만 일차적으로 승가의 생존을 위 어서 얻으면 좋고, 얻지 못하면 한 번 더 말해보고, 또 얻지 못하면 한 번
해서 제정된 것이다. 더 말해보고, 그래도 얻지 못하면 한 번 더 말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다
승가의 목표가 수행에 있다 해도 우선 살아있어야 수행도 할 수 있다. 른 곳에 희망을 걸고 그 자리를 떠나라.”고. 이것이 고수가 가르쳐준 동냥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밥이었다. 부처님께서는 5비구와 함께 살면서부터 걸 의 기술이라니. 웬만한 근기가 아니고서야 따라 하기 힘들 것 같다. 힘든
식을 해서 드셨다. 처음에는 먼저 도를 안 교진여와 구린에게 밥을 빌어 중에서도 평판이 안 좋은 비구들은 밥을 얻기가 더 어려웠다. 맹수보다 무
오게 하고 아직 덜 된 제자들을 놓고 가르치셨다. 그러다가 다섯 명이 다 서운 것이 동네평판이었기 때문이다.
도를 알게 된 뒤에는 함께 밥을 빌며 법을 전하러 다니셨다. 그 뒤에 가섭 품행제로의 비구들이 나쁜 짓을 저지르며 몰려다니자 평판이 나빠졌
과 사리불 같은 큰 제자들이 합류하면서 몇 백 명 단위로 사람들이 늘어 다. 동네에서 밥을 얻기가 힘들어진 이들은 걸식을 나갔다가 한 비구니를
나 1250명이 되었다. 이때부터 부처님은 떼 식구를 책임진 교단의 수장이 보았는데 한두 사람에게서 밥을 얻는 것이 아니었다. 그 비구니는 착실하
되었다. 게 수행한다고 동네에 소문이 났기 때문에 밥 줄 사람이 줄을 선 것이다.
처음에는 거처가 충분하지 않아서 한 데서 도를 닦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비구들은 이렇게 살 꾀를 낸다. “우리가 이렇게 고생할 것이 아니라
안전한 거처가 없으니 수행자들은 항상 위험을 안고 살 수밖에 없었다. 견 저 비구니 뒤를 따라다니자. 그러면 어렵지 않게 밥을 먹을 수 있겠다.” 그
디기 어려운 기후에 해충과 맹수의 피해가 심했다. 한적한 곳에서 혼자 수 리고는 다음날부터 뒤를 따라다니며 밥을 뺏어먹었다. 양심마저 없었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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