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 - 고경 - 2018년 6월호 Vol.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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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그리하여 결국은 유심(진여)정토 자성(상주불멸)미타로 인도하는 것이니   이니 우주의 광명인 불교의 전도(前途) 는 오즉 흑암(黑暗)에 싸여 있을
 “극락도량이 하처 (何處)오? 현금 생사가 즉 시(是)니라”고 대서특필하여 그   따름이다. 그 이유인즉 진리를 위한 입교(入敎)는 희소하고 대다수가 막대
 진의를 명백히 한 것이다.  한 재산을 배경으로 한 불교를 이용하여 각기 생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

 그럼으로 진정한 실지에 도달하기 위한 허위의 방편을 설함이 절대로   여 출가한 연고이다.
 과실 (過失)되지 않는다고 석가는 상시 설명하였든 것이다. 이것은 자체의   그러나 석가는 여사(如斯)한 도배(徒輩)에 관하여 엄중한 단안(斷案)을

 허위를 엄폐하며 그 사칭성을 합리화하려는 일종의 술책이 안이라 당초   나렸다. 즉 “엇떠한 도적놈이 나의 의복을 빌녀 입고 나를 팔어서 만흔 죄
 이해가 곤란할 때는 방편가설으로 제시하여 점점 이해가 깊혀 완전 이해  만 짓느냐” (云何賊人假我衣服禆販如來造種種業 – 『능엄경』) 수인(誰人)을 막론

 에 도달하면은 그 가면을 벗고 당초 가설은 전부 그리로 인도하기 위한 방  하고 불제자의 가면을 쓰고 부처를 팔어 생계를 일삼는 자는 전부 도적이
 편가교임을 중요 경전중에 상세히 명시하였으니 술책이라고 봄은 천부당   라 규정한 것이다. 현 교계로 보와서 이 규정이 통용 안 될 자가 희유(希有)

 만부당한 것이다. 설사 방편가설임을 설파하지 않어도 진리를 파악하고 보  할 것이다.
 면은 엇떤 부문이 방편이엿난지 각각 자각케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  만고의 진리인 불타가 상품화되였다면은 이보다 더 통분(痛忿)할 일은

 하고 방편가설임을 석가 자신이 직접 명백히 한 바에야 일 (一)도 논의할 필  없을 것이다. 그럼으로 다소라도 양심이 있다면은 생계의 길이 없으면 차
 요가 없는 것이며 그 진의 파악에만 노력할 따름이다.  라리 살인 강도를 하였지 만고에 위대한 불타를 상품화하여 이를 파라먹

            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석가의 규정대로 말하면 부처를 파라먹고 사는
 다. 오즉 진리만을 위하여  자는 도적이라 선언하였으니 사원은 적굴(賊窟)이요 불타는 도적의 앞잡

            이가 되는 것이니 이렇게 되며는 불교의 전도(前途)는 명약관화(明若觀火)
 이렇듯 위대한 진리의 보고(寶庫)인 불교이나 현금 교계 현상은 수모(誰  이다.

 某)를 막론하고 장시(長時) 태식(太息)  않을 수 없다. 진리의 도량인 사원  원래 출가입산이란 오즉 진리만을 위한 생활이다. 그리하여 만승제왕(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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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 일반 유객 (遊客)의 관람처가 안이면은 소위 기복신자의 속신(速信) 소굴  乘帝王)의 귀(貴)도 흔갓같이 던지고 사해팔방(四海八方)의 부(富)도 헌신짝

 이 되여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영원의 진리를 구명하여 일체 함령을 개도  갖치 차버리난 것이다. 그리하여 수도과정에 있어는 위법망구(爲法忘俱)하
 (開導)하는 중대한 책무를 가진 불제자 즉 소위 승려의 현황은 한심하기   여 수화(水火)를 불고(不顧)하고  오즉 수도에만 진심갈력(盡心竭力)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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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짝이 없어 안내인이 안이면 무당 대행으로 오즉 호구(糊口)에만 급급할 뿐  것이다. 여기에 있어서 추호라도 명예나 이양(利養)에 대한 생각이 염두에


            19)   전도(前途) : 앞으로 나아갈 길.
 18)   태식(太息) : 한숨.  20)   수화(水火)를 불고(不顧)하고 : “물불을 가리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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