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 - 고경 - 2018년 6월호 Vol.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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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읽는 성철 스님 1
청년 이영주, 스님이 되다
창주(滄珠) 향산(香山) │ 자유기고가
“하늘에 넘치는 큰 일들은/ 붉은 화롯불에 한 점 눈송이요/ 바다를 덮
는 큰 기틀이라도/ 밝은 햇볕에 한 방울 이슬일세./ 그 누가 잠깐의 꿈속
세상에/ 꿈을 꾸며 살다가 죽어가랴/ 만고의 진리를 향해 모든 것 다 버리
고/ 초연히 나 홀로 걸어가노라.” 1936년 봄 25세 청년 이영주가 세속의 인
연을 끊고 은사 동산 스님에게 계를 받고 스님 성철이 된 뒤 ‘수행자의 기
개’를 밝힌 출가시 (出家詩)이다.
조선이 일제에게 완전히 국권을 빼앗기고 2년 뒤인 1912년 4월 6일 (음 2
월 19일)에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에서 지리산의 기운을 안고 태어난 이영
주(李英柱), 어려서 서당에도 다니고 소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해보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소년 시절의 영주는 그런 불만을 오로지 독학으로
동서고금의 고전을 읽으며 달래고 있었다.
그러다 스무 살이 지난 어느 날 우연히 만난 어떤 스님에게서 영가 대사
의 『증도가(證道歌)』를 얻어 읽다가 ‘어두운 밤에 길을 밝혀줄 등불을 만
난 것’ 같은 희열을 느꼈다. 이 『증도가』가 그의 인생행로를 완전히 바꾸고
꽉 막힌 채 억눌려 있던 한국 불교를 살리게 되었으니, 그것을 전해준 스
님과의 만남은 필연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스님은 한국불교를 살리려고
잠시 모습을 보여준 관음보살의 화현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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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빼앗기지 않았으면 유학을 공부하여 선비 학자의 길을 가거나 해인사에서 출가한 직후의 성철 스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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