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5 - 고경 - 2018년 6월호 Vol.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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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요흥이 구마라집을 지극히 모신 것은 사실이지만 해서는 안 될 일 (例)로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구마라집과
도 했다. 억지로 결혼시킨 것이다. 『고승전』 「구마라집전」에 기록이 전한 승조가 역경에 종사할 그 시기의 장안 일대엔 전쟁이나 큰 소란이 없었다
다. “요흥이 항상 구마라집에게 말했다. ‘대사의 총명함과 뛰어난 깨달음 는 점이다. 413년 구마라집이 타계하고 414년 승조가 스승을 뒤따르고,
은 세상에 둘도 없다. 대사가 타계한 후 가르침을 이을 법의 종자가 없어서 416년 후진 왕 요흥이 죽은 뒤 장안과 그 부근은 다시금 전란의 소용돌이
야 되겠는가?’ 핍박해 마침내 기녀 열 명을 받아들이게 했다. 그때부터 구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마라집은 사찰에 머물지 않았다. 모든 것을 풍족하게 공급 받으며 별도로 한편, 당시 구마라집 밑에서 공부하기 위해 몰려든 문도는 3천여 명, 그
관사를 짓고 살았다. 강의할 때마다 구마라집은 ‘냄새나는 진흙 속에서 연 들 가운데 입실한 사람은 오직 8명 정도였다. 나이 많은 사람 중에서는 도
꽃이 피는 것과 같다. 단지 연꽃만 취하고 냄새나는 진흙은 잡지 마라.’며 융(道融, 372~445)과 승예(僧叡), 젊은 사람 사이에서는 도생(道生, ?~434)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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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를 들어 먼저 말했다.” 여광이 구자국을 점령했을 때도 비슷한 일이 승조가 으뜸이었다. 이들을 구마라집 문하의 사대제자[四聖]로 부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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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었다. 『고승전』 「구마라집전」에 있는 구절이다. “여광은 구마라집을 사 도 한다. 구마라집은 이들과 함께 401년부터 413년까지 양과 질에 있어서
로잡은 뒤 그의 지혜가 얼마쯤인지 알지 못했다. 단지 나이가 어린 평범한 그 누구도 따라오기 힘든 방대한 역경 (譯經) 작업을 진행했다. 당연히, 구
사람으로만 보고 희롱했다. 강제로 구자국의 왕녀를 부인으로 맞이하게 마라집의 역경에 승조도 참여했다. 『고승전』 「승조전」에 보이는 “요흥은
했다. 구마라집이 제안을 받지 않고, 심히 괴로움을 드러내며 간절한 말로 승조와 승예에게 소요원에 들어가 구마라집을 도와 경론을 자세히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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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했다. 여광이 말했다. ‘도사의 지조는 너의 죽은 아버지보다 나을 것 듬도록 시켰다.” 는 문장이 있기 때문이다. 역경사업을 통해 반야중관을
이 없지 않느냐? 왜 한사코 거절하느냐?’ 이에 독한 술을 먹여 여자와 함 비롯한 대승불교의 핵심 사상들이 중국인들에게 명료하게 소개됐다. 흉
께 밀실에 가둬버렸다. 핍박당하기를 이런 정도에 이르러 마침내 절개를 노(凶奴)·갈(羯)·선비(鮮卑)·저(氐)·강(羌) 등 다섯 민족이 번갈아 십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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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손당하고 말았다.” 인용한 두 기록을, 십육국시대의 중국인들이 불교 (혹은 십구국)을 세웠다는 십육국(십구국)시대(304~439)에 주로 활약했던 육
를 믿기는 했지만 여전히 ‘세상에 태어나면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 가칠종(六家七宗, 반야사상에 대한 이해 방식이 서로 달랐던 일곱 개의 학파)에 소
는 전래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알려주는 하나의 실증적인 예 속된 학승·학자들이 대체적으로 ‘도교의 무(無)와 비슷한 그 무엇’으로 개
념·내용을 오해했던 공(空)사상은 이때서야 비로소 ‘그 얽힘’을 풀고 나올
13) “姚主常謂什曰: ‘大師聰明超悟, 天下莫二, 若一旦後世, 何可使法種無嗣.’ 遂以妓女十人, 逼
令受之. 自爾以來, 不住僧坊, 別立廨舍, 供給豐盈. 每至講說, 常先自說譬喻, 如臭泥中生蓮 15) “什至長安, 因從請業. 門徒三千, 入室唯八, 睿為首領. 文云: ‘老則融睿, 少則生肇’.” 길장(吉
花, 但採蓮花, 勿取臭泥也.” [南朝梁]慧皎 著·湯用彤 校注, 『고승전(高僧傳)』, 北京:中華書 藏) 제(製), 『중론서소(中論序疏)』, 『대정신수대장경』제42책, p.1a. 이하 『대정신수대장경』에서
局, 1992, p.53. 인용할 때는 T로 표기한다. 예를 들면 T.42, p.1a. 페이지 뒤의 a, b, c는 해당 페이지의 상단,
14) “光既獲什, 未測其智量, 見年齒尚少, 乃凡人戲之, 強妻以龜茲王女, 什距而不受, 辭甚苦到. 중단, 하단을 의미한다.
光曰: ‘道士之操, 不踰先父, 何可固辭.’ 乃飲以醇酒, 同閉密室. 什被逼既至, 遂虧其節.” [南 16) “姚興命肇與僧叡等, 入逍遙園, 助詳定經論.” [南朝梁]慧皎 著·湯用彤 校注, 『고승전 (高僧
朝梁]慧皎 著·湯用彤 校注, 『고승전 (高僧傳)』, 北京:中華書局, 1992, p.50. 傳)』, 北京:中華書局, 1992,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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