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0 - 고경 - 2018년 7월호 Vol.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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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의 ‘살’은 원래부터 모음이 ‘ㅏ’였으니, ‘살다’는 후보에서 탈락이다.
             결국 ‘사량하다’와 ‘사르다’만 남는데, 둘을 섞으면 사랑의 본질이 나타나는
           듯도 하다. ‘당신을 열렬熱烈히 사모思慕한다’는 옛날 연애편지의 해묵은 관용

           구는 사실 인류의 면면하고 숭고한 전통을 보여준다. ‘사랑하는 사람의 안위와

           행복을 생각하며 나를 불태우고 희생하는 것’, 사랑의 객관적인 원형이겠다.
             만인萬人을 사랑하면 만인의 사랑을 받는다. 그래서 역대 임금들도 현실의
           톱스타들도 만인을 사랑한다. 만인을 사랑한다고 해야, 정권이 안정되고 억대

           의 개런티가 끊이지 않는다. 결국 만인에 대한 사랑은 만인에 대한 지배와 다

           르지 않다. 반면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돈이 되지 않고 그다지 표도 나지 않
           는다. 더구나 피지배의 성격을 띤다. 성질만 나고 희생만 강요당하기 십상이
           다. 나이를 한참 먹었다 싶은데 여전히 ‘빵 셔틀’을 뛴다.

             수없이 다치고 상처주고 바람맞는 속에서 나는 서있었다. 그리하여 나를 비

           우는 것이 아니면 사랑이 아니다. 그대의 입장에서 생각해주는 것이 아니면 사
           랑이 아니다. 모텔에 가자고 조르는 것이 사랑은 아니다. “사랑한다”는 말이 사
           랑까지는 아니다. “사랑해달라”는 말이 사랑이어선 안 된다. 그대의 편에 서주

           는 것이 아니면 사랑이 아니다. 행여 발밑이 오판이거나 치욕이더라도.

             나는 사랑이 모자라고 사랑에 서툴며, 때로는 사랑 앞에 군침 흘리는 걸 좋
           아하는 짐승이다. 다만 그대의 잠을 깨우지 않고 출근하는 것, 내가 멀리 갔을
           때 그대의 삶을 걱정하는 것, 걱정해주는 게 아니라 그냥 막 걱정이 되는 것,

           나의 정신병력을 염려하는 그대 옆에서 오래오래 살아야겠다고 결심하는 것,

           그건 사랑일지 모른다. 잠 못 이루거나 하루에 10시간씩 한 사람과 통화하는
           젊은이 또는 내연남들아, 사랑은 그리 아름답지도 포근하지도 않다. 나를 내어
           주고 죽여낸 곳에만, 피를 흘리며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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