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6 - 고경 - 2018년 7월호 Vol.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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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세 마지기를 개간하는 데 그쳤다. 사실상 두 마지기 손해를 본 셈이다.
대중이 이걸 가지고 구시렁대자 혜월도 투덜댔다.
= 인심仁心은 인심人心의 부하여서, 주인이 곳간을 부숴버리거나 곳간 열쇠를 달라고 할 때
찍소리도 못한다.
“다섯 마지기는 그대로 있고 세 마지기가 늘지 않았느냐.”
= 찍찍거려봐야, 쥐밖에 더 되겠나.
처음부터 예고된 손실이었다. 개간을 위해 고용한 인부들은 대충 일했다.
게다가 걸핏하면 혜월에게 ‘부처님 말씀을 가르쳐 달라’ 조르며 일손을 놓았다.
농땡이가 빤한 데도 혜월은 그때마다 친절히 법문을 해주었다. 인부들이 꼼수
를 써서 노동의 경제성을 추구할 때, 절 땅을 사간 사람들은 혜월의 순진함에
힘입어 자본의 경제성을 이룩했을 터이다. 경제성은 기본적으로 폭력성을 내
포하고 있다.
당장만 생각하면 혜월의 행동은 철두철미하게 바보짓이다. 그러나 누가 농
사를 짓든, 농지의 총량은 여덟 마지기로 증가했다. 땅의 새 주인들은 스님들
앞에서 떵떵거리거나 코웃음을 치겠으나, 땅은 늘어난 채로 살아있다. 장 씨가
그 땅에서 밭을 갈든 이 씨가 새 건물을 지어 올리든, 땅은 살아서 사람을 두루
두루 계속 먹여 살릴 것이다.
그 땅을 투전으로 날려먹든 자식들 학비로 날려먹든 상관없다. 국토는 좁아
도, 땅 살 사람은 많으니까. 아예 전쟁이 터져서 모두 죽고 땅문서가 불타버려
도, 땅은 유유히 자리를 지키며 새로운 주인을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요행히
혜월의 법문을 들었던 이들이나 그 자손들이 살아남았다면, 거기서 술이나 팔
고 있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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