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8 - 고경 - 2018년 8월호 Vol.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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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꼬박꼬박 돈을 줬다. 가끔 더 주기도 했고 밀려도 주기는 줬다. 그는 노
임勞賃으로 자신의 권능을 입증하면서 나약하고 게으르고 욕심 많은 나를
붙들어 세웠다.
이제는 출근도 하나의 습관이어서, 일터에 나가지 않으면 마음이 자못
불편하다. 연차를 하루 쓴 날은 괜히 죄지은 거 같다. 조직이 주는 일을 하
고 조직이 바라는 일을 하면서 조직이 주는 돈을 타먹는 게 모든 조직원들
의 통일된 삶의 양식이다. 빨간 이념이고 파란 이념이고, 똑같이 시장市
場이고 밥벌이더라. 나는 여기까지 늙었다.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를 해결하기 위해 납자들은 선방에서 결연히 화두
를 든다. 나는 대처帶妻의 신분이어서 그 시간에 돈 벌 궁리를 하거나 피할
궁리만 한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는데, 더 이상 그 ‘어쩜’을 거부할 기력
이 없고 의향도 없다. 돌이켜 보면, 별의 별일들을 용케도 통과했고 별 거
지같은 것들이 그래도 나를 이만큼 만들어놓았던 것이다. 밟아줘서, 조금
은 고맙다고 해야겠다.
인간의 숙명적 굴레인 카르마karma를 ‘일 업業’으로 번역한 건 절묘한
선택이었다. 수없이 작은 일들이 지탱해줘야만 비로소 ‘태어남’과 ‘죽음’이
라는 큰일이 형성된다. 생명은 끊임없이 모양을 바꿔가며 세상에 나와서
는, 일하고 일벌이고 일을 치르다가 돌아간다. 사람을 만나지 않고 부딪히
지 않으면 돈이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옆에 있으면 불편한 사람이나 나를
욕하는 사람도 그저 ‘일’이라 여기면서 넘어간다. 그들은 내게 길바닥에 솟
은 돌부리이거나 영혼 없는 비바람일 뿐이다. 무엇보다, 내가 잠자코 일을
해야 내가 살고 또한 그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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