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8 - 고경 - 2018년 8월호 Vol.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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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의 살구는 거짓 현상이지만 거짓 현상을 따라가면 공이라는 이법의 세
계, 진제의 세계로 연결된다. 가假라는 현상은 공이라는 진제의 세계로 인
도하는 문이 되는 셈이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종용귀체從用歸體가 된다. 작
용이라는 현상을 쫓아가면 본체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여기서 무수한 존
재들은 거짓이 아니라 실상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된다.
차별과 변견 녹이는 용광로
셋째는 본질[體]과 작용[用]이 같이 드러남이다. 공空이라는 본질을 따라
가면 살구라는 현상을 만나게 된다. 또 살구라는 현상을 따라가면 공이라
는 본질을 만날 수 있다. 따라서 『탐현기』에서는 “법계와 인과가 분명히 나
타나 보인다[法界因果, 分明顯示].”고 했다. 법계라는 실체와 인과라는 현상
이 동시에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 연기와 공은 사물의 형태로 드러나고, 사
물은 연기와 공이라는 본질을 내포한다. 이렇게 보면 공이라는 본체도 있
고, 가상이라는 현상도 있다. 이를 체용쌍현體用雙顯이라고 한다.
본질로서 본체도 드러나고, 현상으로서 작용도 드러나기 때문에 쌍명雙
明이다. 본체와 현상에는 색과 공이 동시에 있음으로 색공쌍조色空雙照가
되고, 공가쌍조空假雙照가 된다. 공이라는 본질과 가상이라는 현상이 모두
드러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공이라는 본체와 색이라는 현상이 모두 긍
정되는 완전긍정에 이르게 된다.
넷째는 본질과 작용이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살구는 연기라는 관계의
산물이므로 개체로서 살구는 공하고 실체가 없다. 하지만 눈앞에 드러난
한 알의 살구는 본질을 내포하고 있음으로 아무 것도 없다는 명제도 부정
된다. 『탐현기』에서는 이를 쌍융구리雙融俱離라고 했다. “법계와 인과가 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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