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9 - 고경 - 2018년 8월호 Vol.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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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원융하고 함께 떨어진다.”는 뜻이다. 법계라는 본질과 현상이라는 인
            과가 완전하게 녹아서 융합[雙融]하기 때문에 법계라는 실상과 인과라는 현
            상이 모두 사라진다[俱離]. 존재의 본성이라는 성性과 현상이라는 상相이 서

            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뒤섞여 있어 본성이 곧 현상이고, 현상이 곧 본성

            이 된다. 법장은 이를 성상혼융性相混融이라고 했다. 본질과 현상이 완전하
            게 융합하여 걸림 없이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청량 역시 체용용융體用鎔融이라고 풀이했다. 본체와 작용이 완전히 녹

            아서 하나로 융합된다는 것이다. 색공의 관점에서 표현하자면 색공쌍차色

            空雙遮가 되고, 공가쌍차空假雙遮가 된다. 색이라는 현상과 공이라는 본질이
            따로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그런 분별은 모두 사라진다. 공이라는 본질과 가
            상으로서의 현상도 모두 녹아서 하나가 되기 때문에 색이니 공이니 하는

            분별 자체가 설 수 없다.

              결국 사문의 핵심은 현상과 본질, 체와 용이라는 차별은 중도라는 용광
            로 속에서 모두 녹아 없어진다. 용광로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는 모든 것이
            녹아서 한 덩어리가 되고 만다. 그와 같이 차별과 개별상을 녹여 하나의 전

            체성을 실현하는 것이 화엄의 핵심이고, 그것이 곧 중도의 원리이다. 이와

            같은 중도의 정신을 받아들이면 나와 너, 진보와 보수, 남과 여라는 분별
            과 대립을 녹이는 용광로가 된다. 그런 용광로에서는 모든 분별과 경계가
            해체되어 절대평등의 세계, 이분법적 대립과 갈등이 사라진 동체대비의 세

            계가 활짝 열리게 된다.

                                   서재영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선의 생태철학연구」로 박
                                   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 연구교수, 조계종 불학연구소 선임연구
                                   원, 불교신문 논설위원 등을 거쳐 현재 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으로
                                   있다. 저서로 『선의 생태철학』 등이 있으며, 포교 사이트 www.buruna.
                                   org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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