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7 - 고경 - 2018년 9월호 Vol.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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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긴 시간 사찰에 머물면 향香냄새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옷
에 스며듭니다. 또는 코트를 입고 새벽에 안개 속을 걸으면 코트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촉촉하게 젖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처럼 훈습이란 언
제부터인지 알 수도 없고 또 명확하게 알아차릴 수 도 없지만, 확실하게 우
리들의 인격 속에 침투하고 우리들의 인격과 세계를 형성하는 것을 말합
니다. 즉 우리의 인격 근저[아뢰야식]에 새로운 경험이 쌓이는 것에 의하여
인격이 새롭게 되며 또한 자기를 생기시키는 원동력이라고 말할 수 있습
니다.
습習과 관련된 제 할머니 일화를 소개하겠습니다. 돌아가신 할머니는
99년 6개월을 사신 분인데, 한 번도 며느리나 자식, 손자에게 화를 낸 적
인 없는 아주 온화한 분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제가 하는 일이 잘못되어 울
거나 심하게 짜증내면 할머니께서는 경상도 사투리로 늘 ‘니 습인데 우짜
겠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저는 ‘습’이 무슨 의미인지 전혀 몰랐는
데, 불교[유식]를 배우면서, 정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손자에게
‘전생이든 현생이든 자신이 한 반복된 행위로 이런 결과가 왔다. 그러니 지
금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는 의미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유식에
서 사용하고 있는 ‘훈습’과 그 의미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처럼 우리
는 의식은 못하지만, 생활 속에서 무심결에 유식 용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
습니다.
그런데, 훈습을 설명하는 중에 벌써 의미를 모르는 단어가 2개(아뢰야식,
종자)나 등장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해도 포기하지 마시고 체크해 두십
시오. 차례로 자세하게 설명하겠습니다. 동시에, 참선·명상meditation할
때 반드시 나타나는 다양한 ‘마음작용[심소]’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설명할
생각입니다. 수행의 원동력인 선한 마음작용(믿음·부끄러움·수치심·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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