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2 - 고경 - 2018년 9월호 Vol.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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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음미하는 부처님 말씀 4
걸식乞食의 품격
윤제학 | 작가·자유기고가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대비구 천이백오십 인과 함
께 계셨다. 공양 때가 되자 세존께서는 가사를 갖추신 다음 발우를 들고 사
위성에 들어가시어 밥을 빌러 다니셨다. 한 집 한 집 차례로. (밥 빌기를 마
치시고는) 본래 계시던 자리로 돌아오셨다. 공양을 마치신 다음, 가사와 발
우를 거두시고, 발을 씻으시고, 자리를 펴시어 앉으셨다.”
『금강경』의 「법회인유분」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펼치는 데 갖추어
야 할 여섯 가지 조건 즉 육성취(六成就:信·聞·時·主·處·衆)를 밝힌 대목
입니다.
위 경전 구절에서 굵은 글자로 나타낸 부분은 육성취와 관련 없습니다.
부처님과 제자들의 일상입니다. 대소변을 보고 잠자는 행위만 기록하지 않
았을 뿐입니다. 초등학생들에게 일기쓰기를 가르칠 때 선생님들이 ‘제발
날마다 똑같이 반복하는 일은 쓰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바로 그런 내용
입니다.
“좋은 일도 없는 것만은 못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벽암록에 보이는 운
문 스님의 말입니다. 영가 스님이 「증도가」에서 노래한 ‘한도인閑道人’의 경
지도 부럽습니다. 하지만 사위성에서 아침을 맞이하여 ‘걸식’으로 하루 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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